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산을 오르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제가 사는 광주에서 무등산은 저의 힐링 장소입니다. 매주 2회 이상 무등산에 올라 20km 정도를 달립니다. 5시간 안팎 산을 달리다보면 몸에 에너지가 넘치고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
김 씨는 트레일러닝이 코로나19 시대 최고의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김동해 씨는 일찍 산 정상에 올라 해가 뜨는 광경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크다고 했다. 어떨 땐 발 밑에 구름물결이 넘실 대 가슴이 벅차다고 한다. 김동해 씨 제공.
“산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해가 떠오르는 광경 본 적이 있나요?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어떨 땐 온 천지가 눈꽃으로 덮여 있고 구름바다로 넘칠 때도 있죠. 다시 달릴 때 제 발 아래서 구름이 출렁거릴 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김 씨는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로 동료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산에 오른 게 계기가 마라톤에 입문했다.
“제가 불혹의 나이가 돼 가던 시기에 동료들이 구조 조정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남은 자의 미안함이라고 할까요. 심적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뒷동산에 올라 달렸죠.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날아갔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다 벤치에 누가 보다 두고 간 신문이 있었는데 ‘여러분도 인간 한계에 도전해보세요’란 문구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서울 한강변에서 열리는 서울마라톤 소개 기사였습니다. 그래 이거다 하며 신문을 오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처음에 초등학교 운동장을 60바퀴 달리는데 자꾸 중간에 까먹어 콩 60개를 볶아 한바퀴 돌 때마다 하나 씩 먹으며 달렸어요. 뭐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무턱대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1999년 3월 제2회 서울마라톤에 출전했다. 42.195km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3시간35분에 완주했다. 첫 도전치고는 아주 좋은 기록이다. 이 때부터 물 만난 고기마냥 마라톤대회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 45분대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는 마스터스마라토너들에겐 꿈의 기록이다. 이듬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47분대, 한 달 뒤 함평나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48분대로 남자부 정상에 올랐다.
“마라톤 풀코스 2시간30분대 기록을 세워보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누가 철인3종(트라이애슬론)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 재밌을 것 같아 바로 시작했죠.”
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산을 질주하고 있다. 그는 산을 달릴 때 가장 즐겁다고 했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가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에 출전해 모래언덕을 질주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가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에 참가해 모래언덕을 오른 뒤 포효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국내 트레일러닝대회는 거의 다 출전했다. 한 대회 우승 상품으로 2015년 인도양 프랑스령 레이뇽에서 열린 트레일러닝대회 164km 등 해외 대회에도 출전했다. 2016년 5월에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47km에서 7시간35분으로 국내 최고기록으로 우승하기도 했다. 2017년엔 고비사막마라톤 225km, 2018년엔 핀란드 국토종단 225km를 완주했다. 가장 최근엔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1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128km 트레일러닝을 다녀왔다.
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트레일러닝에서는 오르막을 잘 공략해야 합니다. 근성이 중요하죠. 언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언덕을 만나면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걸으려고 하죠. 힘들다고 미리 선을 긋는데 언덕을 잘 달려야 기록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힘들 때 일수록 시간과 싸워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도전해야 합니다. 전 오르막 훈련에 시간을 많이 할애 합니다. 내리막은 몸을 풀고 가는 구간에 불과합니다.”
김 씨는 천천히 달려도 힘드니 가급적 빨리 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30분에 달리는 것보다 5시간에 달리는 게 더 힘듭니다. 오르막을 만났다고 겁먹으면 몸이 무거워집니다. 가파른 오르막이라면 두 팔까지 활용해 네 발로 고릴라 주법으로 올라야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김동해 씨는 산을 달리며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김동해 씨 제공.
김 씨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도 하나 씩 이뤄하고 있다. 2019년엔 킬리만자로 정상을 찍었다. 올해가 정년의 해라고 한다. 그는 “솔직히 다양한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헬스클럽에서도 몸이 좋다고 평가합니다. 은퇴한 뒤에는 실버 몸짱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 게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입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 완주도 목표다 UTMB는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 대회로 170km(UTMB), 101km(CCC), 119km(TDS), 290km(PTL), 55km(OCC) 등 5개 종목이 열린다. UTMB에 가려면 각종 트레일러닝대회에 출전해 점수를 따야 한다. 그는 “지금 코로나 때문에 포인트를 못 쌓고 있어요. 모든 게 정상화 되면 당장 포인트를 쌓아 UTMB로 향할 겁니다”며 웃었다.
김동해 씨에게 산은 에너지를 얻고 스트레스를 날리는 힐링 공간이다. 김동해 씨 제공.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