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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매매혼→북송→탈북…“영어가 삶 바꿨다” 탈북민女 英구의원 도전

입력 | 2021-02-07 15:28:00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 © 뉴스1 자료 사진


영국에 13년째 거주 중인 북한 이탈 주민 박지현(52)씨가 오는 5월 영국 지방 선거에 출마해 화제가 되고 있다. 탈북민의 제3국 공직 출마는 박씨가 처음이라고 AFP는 7일 보도했다.

박씨는 맨체스터주 베리시 홀리루드 선거구 구의원 후보로 출마한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소속이다.

박씨는 “영국 사람들은 이 땅에 온 저를 환영해줬고 덕분에 저는 자유를 찾았다”면서 “이에 보답하고 싶다. 목소리없는 사람들을 대변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북한에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8년 처음으로 탈북을 시도했다. 남동생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헤어지게 됐고, 알콜중독자이자 도박꾼인 첫 남편과 매매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낳고 중국에서 6년간 거주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수감 생활에서 매일 같이 이어지는 굶주림과 고문으로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와병으로 수용소에서 쫓겨난 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아들을 찾았다. 2005년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몽골행을 시도했고, 무리 중 한 명과 다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박씨 부부와 아들은 몽골 대신 베이징으로 가 숨어 살다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2008년 1월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렇게 맨체스터 베리시에 정착하게 됐다.

박씨는 원래 교사였지만 맨체스터에 한인식당을 운영하면서 인근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영어를 배웠다. 이후 인권활동가가 되어 북한의 인권 유린을 고발하고 탈북민의 영국 정착을 돕는 일을 해왔다. 그는 “베리시는 내 모국”이라며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며 다시 태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2016년 보수당에 입당했다. 그는 “보수당의 가치는 자유, 정의, 교육, 가정 생활”이라며 “북한에도 영국에도 필요한 가치”라고 했다.

박씨의 당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부리시는 야당인 자유민주당의 텃밭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선거운동까지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씨는 자유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를 느낀다고 한다. 일당독재인 북한에서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명한 단일후보만 선거에 나올 수 있다. 박씨는 “이기든 지든 보수당에서 계속 지역사회와 난민을 위해 주민들과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헤이즐 스미스 런던 동양아프리카연구소 북한연구원은 “북한인이 영국의 보수당 후보로 뛰고 있는 것 자체가 뉴스”라며 “북한인이 정치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스미스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 정권도 서구에 정착한 탈북민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관심 있게 주시하는데, 주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으로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뒤 2020년 총선에 당선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다.

박씨는 “북한은 제 과거 삶, 가족과 친구 등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영혼까지 죽이진 못했다”며 “이것이 악과 싸우는 이유이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