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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연구장비’ 한곳에 모아 코로나 백신치료제 개발 돕는다

입력 | 2021-02-08 03:00:00

서울대-가천대 ‘연구지원센터’ 눈길




서울대 세포 및 거대분자 이미징 핵심지원센터는 생물 시료를 얼려 자연 상태로 관찰하는 극저온전자현미경을 비롯한 38개 장비를 모아 구축했다. 서울대 제공

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내 세포 및 거대분자 이미징 핵심지원센터. 연구원 한 명이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M)으로 세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를 닮은 동그란 형태의 바이러스를 찍기 시작했다. 극저온전자현미경은 생물 시료를 순식간에 얼려 자연 상태로 관찰하는 장비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 3차원 구조를 밝혀내며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같은 시각 옆 실험실 모니터에 극저온전자현미경에 찍힌 바이러스의 구조가 떴다. 광학 현미경으로 촬영한 영상도 또 다른 모니터에 나타났다. 노성훈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학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전자현미경과 현미경, 데이터 분석 장비 등 사용되지 않는 실험 장비 38개를 한데 모았더니 바이러스 구조뿐 아니라 세포 속 바이러스의 움직임까지 한번에 볼 수 있는 포괄적 연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잠자는 장비 모아 시너지 극대화

이 센터는 서울대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구조생물학 연구에 특화된 장비를 끌어모아 연구의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가 수행하는 기초과학 연구역량강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모두 73억 원 규모의 연구 장비를 한데 모을 수 있었다.

센터는 장비가 없어 연구에 어려움을 겪은 이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나 예약만 하면 각종 장비를 전문 인력의 지원을 받아 쓸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해 12월까지 센터에서만 897건의 실험이 수행됐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뒤 장비를 활용한 시간은 총 5200시간에 이른다.

지난해 6월 지원 대상에 선정된 가천대 바이오나노융합소재 핵심연구지원센터는 총 34억 원 규모의 연구 장비 15종을 끌어모아 올 1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이 센터는 무기물인 금속 나노 입자에 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추적하는 항체 단백질을 집어넣어 몸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한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연구 장비들을 갖췄다. 한상윤 가천대 바이오나노대학 화학과 교수는 “대학 연구자들이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구매한 값비싼 연구 장비에 대한 유지보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다른 연구자들이 활용하기 어렵다”며 “암 진단이나 나노 입자 치료제, 약물 전달체 등 바이오나노융합 연구에 필요한 분석 장비들을 모아 시너지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센터는 연구 장비 활용뿐만 아니라 유지보수와 장비 활용 교육까지 진행하고 있다. 노 교수는 “바이러스나 항체 연구에서 구조를 관찰하는 작업을 하지 못하던 연구자들의 관심과 의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지난해 12월 말에 센터를 오픈해 이렇다 할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이미 10여 건의 연구 장비 활용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 위해 전국에 연구 장비 네트워크 구축할 것

기초과학 연구역량강화 사업은 2019년 시작해 지금까지 전국에 33개 센터를 촘촘한 네트워크로 구축했다. 올해도 신규로 20개의 센터를 지정해 잠자고 있는 연구 장비를 한데 모아 시너지를 내는 연구를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19 등 국가 현안 연구에 집중하도록 생물안전3등급(BL3) 연구시설을 보유한 대학 센터를 중점적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BL3 연구시설을 보유한 센터로 지정되면 연간 최대 1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 기존 센터의 경우 연간 지원 예산은 3억∼6억 원이다.

박찬수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장은 “국내 대학 가운데 바이러스 기초 연구에 필요한 BL3 시설을 갖춘 대학이 매우 적고 연구 장비의 유지보수, 연구소 관리·운영 지원도 부족해 코로나19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며 “대학의 많은 과학자들이 바이러스 연구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수 reborn@donga.com·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