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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노골적 미국 밀착[오늘과 내일/이정은]

입력 | 2021-02-08 03:00:00

‘미일+한’ 협력구도 피하기 위한
균형 잡힌 3각 협력 외교전략 필요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한국이 300km 제한에 묶여있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 외교전을 벌이던 2012년. 워싱턴의 인사들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사거리 연장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국의 고위 당국자들에게 하나같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본은 뭐라고 하더냐.”

의외였다. 정부가 당시 우려했던 것은 사거리 반경에 들어오게 되는 중국의 반발 가능성이었지 우방인 일본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 인사들이 일본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이를 챙겨 물은 것이다. 배경을 궁금해하는 우리 측에 미국 관계자는 “워싱턴 내 일본 영향력의 뿌리는 이렇게나 넓고도 깊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미국 내 일본의 입김이 센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양국의 밀착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듯하다. 일본이 워싱턴의 싱크탱크에 더 많은 돈을 뿌리거나 더 많은 외교 인력, 로비 자금을 투입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양적 퍼 나르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외교적 끈끈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최근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성 김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은 가장 먼저 일본 측 카운터파트와 대응책을 협의했다. 국무부는 대문짝만한 그의 사진과 함께 이 사실을 트위터로 알렸다. 한국보다 6일이나 앞서 이뤄진 미국과 일본 정상 간 통화는 말할 것도 없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통화 내용을 전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나 ‘인도태평양’ 같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보도자료에는 담지 않았던 표현들을 사용했다. 역내 현안에 대한 논의에서 한국이 뭔가 밀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서 일본의 위상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조정관이 2016년에 쓴 ‘피벗(PIVOT)’이라는 책에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을 지원할 주요한 동맹국으로서의 일본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반면 한국은 베트남, 호주, 필리핀 같은 다른 나라들과 한 묶음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반복된다. 지일파로 꼽히는 캠벨 조정관의 이런 인식이 앞으로 ‘아시아 차르’로 활동하게 될 그의 정책수립 과정에 반영되지 말란 법 없다.

일본은 영국과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을 태세다. 일본, 호주를 거쳐 영국까지 주요 섬나라를 연결하는 라인은 ‘쿼드(Quad)’와 함께 미국의 중국 견제에 힘을 보탤 해상라인이 될 것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일본의 ‘파이브 아이스’(서방 5개국 첩보공유 동맹) 합류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미일 동맹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바이든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지금도 이미 진짜 강하다”고 했다.

워싱턴은 정부가 뒤늦게나마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움직임을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3각 협력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한국이 깨닫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동맹의 개념은 이제 양자 관계를 넘어 미국이 그리는 보다 큰 그림 속에서 새롭게 짜이고 있다. 이에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균형 잡힌 ‘한미일’ 3각 협력이 아닌 ‘미일+한’의 어정쩡한 구도로 끌려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피하려면 한미 동맹을 지금보다도 더 강하게 가져가야 한다. 비핵화에 앞서는 성급한 남북협력 추진으로 인한 미국과의 불필요한 오해나 마찰 요인을 최소화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더 세련되고 영리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 일본이 미국에 갖는 영향력을 우리 국익에 맞게 역으로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업그레이드된 동맹’은 정상 간 말의 성찬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