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당 대회 열병식에서 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한 북한 화학병 부대가 행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2시간 넘게 진행된 열병식 녹화중계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신형 SLBM뿐만이 아니었다. 마스크와 방호복을 쓴 채로 행진하는 수백 명의 ‘화학병’ 부대는 우려를 넘어 기괴함 그 자체였다. 세계 어느 나라도 열병식에 화학부대를 동원하는 경우는 없다. 무차별 살상이 목적인 화학무기는 그 자체로서 반인륜적이고, 운용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지탄받는 행위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현대전 요구에 맞게 전문기술 수준을 높이는 강도 높은 훈련 속에서 높은 실전 능력과 자질을 소유한 미더운 전투원들”이라고 화학부대를 추켜세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에 사용한 VX 신경작용제와 같은 화학무기로 대한민국을 공격하겠다는 위협과 다름없었다. 이달 초 발간된 ‘2020 국방백서’는 북한이 최대 5000t의 화학무기를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술했다.
지난해와 올해 열병식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북한의 위협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개전 초 핵과 같은 대량살상무기(WMD)와 전자·사이버무기까지 총동원한 기습전으로 미 증원 전력이 한반도에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종결짓겠다는 의도가 너무도 확연하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의 도발 협박이 고조될수록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중요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연합사령부를 주축으로 한 양국의 군사력이야말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비대칭 전력’이다. 첨단무기로 무장한 한미 정예 연합군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한미 양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자살행위’라는 점을 북한도 익히 알고 있다는 얘기다. ‘핵우산’(핵장착 전략폭격기·잠수함·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비롯한 미국의 막강한 전략자산이 한미연합사의 뒤를 탄탄히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도 북한에는 ‘눈엣가시’다.
이 같은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대북 억지력은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된 뒤에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군이 주도할 미래연합사는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대한민국의 안위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서 전작권 전환 작업은 최대한 신중을 기해 빈틈이 없도록 추진돼야 한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해 11월 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돼야(all conditions fully met) 전환 준비가 갖춰질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취지다.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 이어 이달 미 국방부가 ‘특정 시기’를 정해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면 양국 병력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거듭 우려한 것도 흘려듣기 힘든 대목이다.
군은 이제라도 북한 핵무력 고도화의 실태와 의도를 최대한 경계하면서 전작권 전환을 비롯한 대북 대비태세를 원점에서 검토하길 바란다. 정권의 일정에 맞춰서 준비가 덜 된 채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작권 전환의 조급증은 안보에 독(毒)이 될 뿐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