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시스
“판사의 판결 성향을 파악해 특정 재판부에 배치하는 건 인사권자가 재판 결과를 조작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이 단행한 1, 2심 법원의 주요 재판부 인사를 두고 현직 부장판사는 9일 이렇게 평가했다. 일선 법관들은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의혹 사건 등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특히 정치권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요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의 판결 결과와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 법관 인사가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법관들 “인사농단” 불만 커져
수도권의 법원에 근무하는 부장판사는 “이번 인사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문제되는 부분”이라며 “이거야 말로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거래’라는 용어에 가장 부합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법원장급 고위 법관은 “특정한 재판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인사농단’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의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재판부 배치와 관련해 큰 의심이나 비난이 없었던 이유는 판사가 모두 독립돼 공정한 재판을 한다는 전제를 사람들이 수긍했기 때문인데 이번 법관 인사로 그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각 법원에서 사무분담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나올지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제 법원에서 각 판사들을 어떤 재판부에 배치하는지 지켜봐야한다”며 “특히 서울중앙지법의 윤종섭 부장판사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재판을, 김미리 부장판사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재판을 그대로 맡게 된다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김 부장판사가 이례적으로 법원에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설 연휴 이후에 정해질 사무분담에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대법원 재판연구관 인사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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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선 재판연구관으로 발령 난 법관들의 인사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김 대법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A 부장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을 지낸 뒤 수도권 법원으로 옮겼다가 이번 인사로 다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복귀했다. 2018년 외부 기관에 파견을 가려다 해당 기관이 더 이상 판사를 받지 않기로 해 무산된 B 부장판사는 이번 인사에서 재판연구관으로 발령 났다. B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일선 법원에 근무할 당시 배석판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법원 안팎에선 “김 대법원장과 가까운 판사들이 대법원으로 복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다만 법원 내부에선 법관들이 실명으로 김 대법원장을 향해 인사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판사는 “어떻게 이런 인사가 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인사권자의 뜻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이라며 “젊은 판사들은 함부로 문제제기 하기도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평판사는 “실명으로 비판 글을 올렸다가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국회의 탄핵 논의를 이유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임 부장판사의 사직 의사를 존중했어야 했다’는 취지의 실명 글을 5일 법원 내부망에 올린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해당 글을 자신 삭제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