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온 ‘변신의 귀재’ …신작 ‘파우스트’서 박사役 맡아 홍길동전-햄릿서도 남자 연기…1인극서는 30개역 소화하기도 “파우스트 박사 꼭 내 인생 같아…완벽함 좇지만 늘 부족하답니다”
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배우 김성녀는 “파우스트를 한다고 해서 꼭 무겁고 엄숙한 표정만 지을 필요는 없다. 동료, 후배, 연출가와 ‘밀당’ 하며 도전하는 과정은 항상 즐겁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마당놀이의 여왕’ 김성녀(71)가 26일 개막하는 국립극단의 신작 ‘파우스트 엔딩’에서 파우스트 박사로 돌아온다. 신작 무대는 약 4년 만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파우스트 배역을 여성이 맡아 주목을 받고 있다. 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그는 “여성 배우가 보기에 파우스트는 참 탐나는 역할이었다. 연기 인생 30여 년 만에 기회가 왔다”며 “‘여자 파우스트’ 말고 그냥 ‘김성녀 파우스트’로 봐 달라”고 강조했다.
작품은 당초 지난해 4월 개막할 예정이었지만 연습실에서 그가 어깨 부상을 당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겹치며 무산됐다. 그는 “지난해에는 열정만 넘치던 상태였다면 지금은 차분히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파우스트 박사’에겐 더 나은 상황”이라고 했다.
연극 ‘파우스트 엔딩’에서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성녀. 국립극단 제공
그는 “평생 롤 모델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판소리”라며 “한 작품에서 춘향부터 변 사또까지 모든 걸 소화해야 하는 국악이 제 단단한 연기와 소리의 토대”라고 했다. 이어 “연출가가 보기에 남자 분장이 은근히 잘 어울리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나도 무대 위 내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며 웃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는 카멜레온처럼 늘 변신한다. 연극배우, 마당놀이 여왕, 예술행정가, 교수 등 수식어가 연기 인생만큼이나 쌓였다. 숱하게 변신하면서도 ‘완벽한 연기’라는 소망을 꿈꾸고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연습 중 조금 변화도 생겼다. “파우스트 박사를 보니 꼭 제 인생 같다. 완벽함을 좇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게 인간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원작 희곡과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결말이다. 원작에서 파우스트는 신으로부터 구원받지만, 이번 작품에선 신이 준 기회를 거절하고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지옥행을 택한다. 그는 “인간성이 말살된 오늘날, 작품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전하는 일갈”이라고 했다. 극의 마지막 장, 신과 메피스토 앞에 선 ‘김성녀 파우스트’는 외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