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민족차별…’ 펴낸 정연태 교수
강경상업학교 차별 실태 조사…입학과정-중퇴생 학적부 분석
조선인 피해 객관적으로 증명

최근 발간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푸른역사)는 1920, 30년대 중 9개 연도에 걸쳐 충남 논산시 강경상업학교 졸업생 283명(조선인 161명, 일본인 122명)의 학업성적과 취업현황을 전수 분석했다. 이 가운데 조선·식산·저축은행에 취업한 조선인과 일본인은 각각 △졸업성적 상위 10% 이내 3명 △10∼30% 1명이다. 성적 상위 30% 이내 조선인 졸업생 수(59명)가 일본인(19명)보다 3배 이상으로 많은 걸 감안하면 민족차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인 정연태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민족 간 취업경쟁에서 성적 이외 변수가 영향을 끼친 걸로 봤다. 당시는 취업에서 학교장 추천이나 면접이 중요했다. 추천서에는 학적부에 적힌 학업성적, 담임교사가 작성한 행실 및 근태 평가, 학사징계 여부가 포함됐다. 행실 평가와 징계는 학교 당국의 주관적 판단에 달린 만큼 민족차별이 이뤄지기 쉬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생 1인당 평균 징계건수는 조선인이 0.25건이었지만 일본인은 0.13건이었다. 재학생들의 퇴학에도 민족차별 흐름이 엿보인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42년까지 조선인 학생은 3100명 중 약 8%(240명)가 중퇴해 일본 학생들의 중퇴 비중(12%)과 비슷하다. 하지만 ‘비행’을 이유로 퇴학당한 조선인(14명)은 일본인(3명)의 4배가 넘었다.
더 눈여겨볼 점은 중퇴 사유다. 양측 모두 경제사정이나 사망으로 중퇴한 비중은 각각 24.3%, 26%로 비슷했지만 나머지에선 차이가 컸다. 조선인 학생은 결석(12.3%) 사상·운동(9.9%) 비중이 높은 반면에 일본 학생은 성적(23.1%) 질병(16%) 전학(13%)의 비중이 높았다. 1923∼1945년 1∼5학년에서 조선인 평균 성적이 일본인에 뒤진 경우가 단 2건에 그친 걸 감안하면 중퇴 사유에도 민족차별의 요소가 반영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