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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환생 사이 100일의 기록[현장에서/곽도영]

입력 | 2021-02-10 03:00:00

[히어로콘텐츠/환생]





칼바람이 불던 지난해 12월 초, 본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다시 부산에 갔었다. 39세에 사고로 부산대병원에서 뇌사 판정을 받고 심장과 신장 두 개를 기증한 고(故) 손현승 씨를 취재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현승 씨의 책상 위에 어머니는 여전히 매일 아침 아들의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김해에 있는 묘원 돌상 위에도 샌드위치와 캔맥주, 쥐포 같은 것들을 매일 새로 올렸다. “평소에도 엄마 힘들다고 맨날 이런 걸 즐겨 사왔었어…”라고 어머니는 읊조렸다.

지난해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꾸려진 히어로콘텐츠팀 2기의 ‘환생’ 시리즈가 9일 마무리됐다. 총 7화에 걸쳐 보도된 ‘환생’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이어준 뇌사 장기기증의 현장을 담았다.

100일 동안 취재팀은 현승 씨 어머니를 비롯해 故 고홍준 군의 아버지(2화), 故 김기석 군의 아버지, 故 박승현 씨의 어머니, 故 박주언 씨의 아내(이상 5화), 그리고 기사에 담지 못한 수많은 기증인과 기증인의 가족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우리네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애끊는 작별의 순간에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숭고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뒤에 남은 아픔 역시 오롯이 감당해내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영웅들은 조용히, 가장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환생’을 취재하며 느꼈다.

‘환생’ 1화를 통해 보도된 손봉수(왼쪽), 손현승 씨 형제.

시리즈가 보도되는 내내 많은 독자들의 응원과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취재팀으로서 가장 감사했던 건 기증 이후 남겨진 가족들이 기사를 통해 위로받았다는 말을 전해 올 때였다. 또 댓글에서나마 간접적으로 이식인이나 다른 기증인 가족들을 만나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상 기증인 가족과 이식인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게 돼 있다. 이번 시리즈가 가족을 보내고 외로운 섬처럼 남아있던 이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연결고리가 되어줄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했다.

보도 이후 어느 날 밤 故 고홍준 군의 아버지 전화가 취재팀에 걸려왔다. “홍준이 이야기 잘 전해줘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만 반복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울음과 취기가 섞여 있었다. 함께 전송해온 사진들에는 홍준이가 떠나기 전에 함께 낚시 갔던 모습, 형들과 장난치는 모습이 생생했다.

‘환생’이 단순히 또 하나의 구호로 끝나지 않고 이런 평범한 영웅들을 진심으로 돌아보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 파동들이 모여 우리 사회가 조금은 따뜻해질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취재팀의 바람이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우리가 기증인을 함께 추모할 수 있는 공원 또한 마련되어 남겨진 이들이 그곳에 자랑스러운 가족을 찾아올 수 있는 날을 그려 본다.


곽도영 히어로팀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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