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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배운 테니스가 내 인생의 자산”[양종구의 100세 건강]

입력 | 2021-02-11 03:00:00


주형민 변호사가 서울 중구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테니스 라켓을 들고 발리 하는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어릴 때 배운 테니스를 지금도 즐기며 건강을 지키고 온갖 스트레스도 날리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양종구 논설위원

주형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38)는 요즘 어렸을 때 테니스를 배운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이 바쁠 때 하루 3, 4시간밖에 못 자서 오는 체력 문제를 해결해주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스트레스도 날려주기 때문이다. 그는 금요일 저녁엔 서울 잠원동, 토요일엔 구로동, 일요일엔 개포동에서 지인들과 어울려 테니스를 친다. 평일 저녁에도 코트를 구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번개’로 모여 2, 3시간씩 땀을 흘린다.

주 변호사는 아버지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 회장(66)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테니스를 접했다. 주 전 회장은 1990년대 초반 당시 중1이던 박성희를 발굴해 사재를 털어가며 가르친 끝에 세계 57위까지 끌어올렸고, 삼성증권 테니스팀을 창단해 윤용일 이형택 전미라 조윤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키운 인물이다. 주 변호사는 “아버님 말씀으로는 제가 말도 배우기 전에 비닐봉지에 바람 넣어 던져주면 제가 라켓으로 쳤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엘리트 선수로 활약은 안 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그가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땐 테니스가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외국인 차별을 견디게 해준 친구였다. 그는 “기숙학교에 들어갔는데 학교폭력이 있는 곳이었어요. 그때 테니스가 절 버티게 해줬습니다”라고 회상했다. 테니스팀에 들어가서 테니스를 잘 치니 백인들이 무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백인 아이들이 한국 애들을 괴롭히기에 그러지 말라며 무엇을 집어 던졌는데 테니스 부원 중 한 명이 ‘쟤는 건들지 마라’며 그만두고 간 적이 있죠”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운동을 잘하면 인정해주는 문화가 있다. 미국 명문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그는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주 변호사는 2014년 7월 한국으로 돌아오며 테니스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는 “당시 유명 로펌에서 어떤 분이 과로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인 몇 명을 모아 매주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틈만 나면 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왜 미국에서 운동 잘하는 사람들을 인정해주는지 직접 일해 보니 알겠다고 했다. 업무 능력이 좀 떨어져도 체력이 좋은 변호사들의 결과물이 좋았다. 하루 14시간 일한다면 마지막 1시간이 중요한데, 그때 체력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는 “스포츠 경기에선 기 싸움도 하고 눈치도 보고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죠. 법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책에선 배울 수 없는 능력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스포츠를 중시하는 문화가 미국 사회 전체에 ‘평생건강의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고 있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는 신입생을 뽑을 때 학업 성적 외에도 과외 활동, 품성 및 인성, 운동 능력 등 4가지 분야를 평가한다. 특히 중고교 시절 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며 주장을 맡은 학생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리더로서 갖춰야 할 기본을 스포츠를 통해 습득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스포츠 전문가들은 스포츠에서 나오는 다양한 상황이 인간을 변화시킨다고 본다. 경기 중에는 용기를 발휘해 밀고 나가야 할 때와 과감히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서로 협력해야 할 때도 있다. 상황에 따라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해야만 한다. 이런 게 리더십 등 인성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미국 명문 사립대가 스포츠를 중시하다 보니 명문 고교들도 스포츠를 필수 과목으로 정해 인성교육의 한 축으로 활용한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스포츠를 즐긴다.

주 변호사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입시교육에 휘둘리며 각급 학교에서 스포츠 및 운동을 경시하는 분위기에서 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어렸을 때 운동 경험이 있으면 성인기에도 운동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다. 어릴 때부터 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면 개인 삶의 질 향상은 물론이고 의료비 절감 등 국가 전체적으로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0세 시대, 어릴 때부터 스포츠와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이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든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