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 안셰르, ‘푸른 방에 있는 화가의 엄마’, 1909년.
엄마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엄마들이 희생과 사랑의 대명사가 될 수는 없는 법. 자식에게 기억되는 엄마의 모습 또한 제각각일 터다. 덴마크의 인상주의 화가 아나 안셰르는 책 읽는 엄마의 모습을 자주 그렸다. 실제로도 화가의 엄마는 평생 책을 가까이 했다. 그 엄마에게 책은 어떤 의미였을까.
덴마크 최북단 어촌 스카겐에서 나고 자란 안셰르가 국제적으로 성공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건 희생적인 엄마 덕이다. 여관 주인과 결혼해 여섯 자녀를 낳은 엄마는 유독 막내딸 안셰르에게 헌신적이었다. 여성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시절, 엄마는 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사립 미술학교에 보냈고, 안셰르는 남성 화가들처럼 파리 유학도 갈 수 있었다. 그러다 동료 화가 미카엘 안셰르와 결혼한 뒤 처음으로 위기를 맞는다. 그림 스승마저 이제는 화구들을 버리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안셰르는 출산 후에 더 활발히 활동했고, 해외 전시를 통해 더 큰 성취를 이뤘다. 엄마의 도움으로 가사와 육아에서 자유로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화가 딸의 작업 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식사는 여관 식당에서 하게 했고, 손녀의 육아도 자처했다. 남편 사후엔 아들과 함께 여관 운영을 도맡으며 70세까지 바쁘게 일하면서도 자식들을 챙겼고, 늘 기도하며 책을 읽었다. 안셰르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기록했다. 그림 속 노모는 햇살이 비치는 푸른색 방에 앉아 책 읽기에 집중하고 있다. 83세인데도 여전히 정정하고 단단한 모습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