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벽 깬 연극 ‘브레이크’ 시각장애 이동우-청각장애 이소별… 무대위서 그들만의 언어로 연기 주연 옆에 있는 비장애인 배우들, 수어 등으로 알려주며 가교역할 기존 무대밖 수어해설과 차별화… 장애인 친화공연 새로운 장 열어
연극 ‘브레이크: BREAK’에서 지하철이 사고로 갑자기 멈추며 배우들이 크게 휘청거리는 장면. 안경모 연출가는 “작품 속 모두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이 모두를 뜨겁게 매개할 수 있기에 배리어 프리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제공
안경모 연출가
참신한 줄거리와 연출로 무장한 연극 ‘브레이크: BREAK’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애인 친화적인) 공연의 새 장을 열었다. 지난달 27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영상과 창작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은 연극계에 소소한 울림을 주고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법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소통은 무대 위에서 마법처럼 실현됐다.
작품이 갖는 차별성은 이해를 돕는 보조적 수단에 머물던 수어와 음성 해설을 극 내부로 깊숙이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주연 배우인 시각장애인 이동우와 청각장애인 이소별은 각자 그들의 언어로 연기하며, 극 중 ‘코러스’ 역할인 배우 도희경 송윤 김명연은 둘 사이 가교 역할을 한다. 예컨대 이동우가 목소리로 대사를 뱉으면 이를 수어로 표현하고, 이소별이 손으로 말한 수어를 목소리로 크게 외치는 식이다.
러닝타임 37분 내내 주연 곁을 지키는 코러스 배우도 극 전개에 필수적 존재다. 세 사람은 단순히 전달자로 머물지 않고 주변 상황이나 사물을 표현하는 연기도 선보인다. “남자가 일어선다” “지하철 불이 꺼진다” 같은 지문 내용까지도 크게 외친다. 주연의 눈과 귀인 동시에 해설자이자 조연 배우인 셈이다. 송윤 배우는 이전부터 수어를 배웠고, 도희경 김명연 배우는 연습 중 수어를 체득했다. 언뜻 생각하면 ‘제대로 연극이 될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고된 연습과 치밀한 연출로 극은 일말의 시차나 어색함도 없이 유려하게 흘러간다. 여느 극과 마찬가지로 재미와 감동을 준다.
이날 서울 종로구 이음센터에서 만난 안경모 연출가는 “장애를 신체적 손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사회적 차별로 인해 ‘장애화되는 것’으로 봤다. 수어와 음성 해설이 그간 극 바깥에 머무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동우는 “장애를 구체화한 이야기에 끌렸다. 대본을 음미하는 매일이 행복했다”고 했다. 세 차례 연극 무대에 오른 ‘신인’ 이소별은 “장애를 미화하지 않으며, 연극적으로 새로운 시도였기에 감흥이 컸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들은 연습 중 더욱 가혹한 파고와 맞섰다. 마스크 착용이 제일 큰 문제였다. 상대방의 입술을 보며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청각장애인에게는 특히 걸림돌이 됐다. ‘립뷰 마스크’를 착용해도 금세 차오른 입김이 입술을 가려 시간이 몇 배로 걸렸다. 텍스트-음성 변환 애플리케이션도 늘 끼고 다니는 필수품이 됐다. 하지만 이동우는 “이 정도로 어려운 게 없었나 싶을 정도로 연습부터 공연까지 우리에게 난관은 하나도 없었다”며 웃었다. 작품 제목 ‘브레이크’처럼 이들은 ‘장애의 벽’을 박살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