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김은경-신미숙 유죄’ 판결문 보니 과거엔 장관이 추천한 후보 내정 文정부 들어선 靑추천이 원칙 ‘자격미달자도 요건 맞춰라’ 지시 추천인사 탈락 위험성 우려해 정상적인 공모절차 무력화 시켜
9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대통령균형인사비서관에게 유죄가 선고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문에는 환경부와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들을 쫓아내고 ‘낙하산 인사’를 하는 데 조직적으로 공모한 사실이 상세히 담겨 있다. 환경부는 산하 공공기관 임원 13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하고 공석이 된 17개 직위 중 15곳에 ‘자기 사람’을 심는 과정을 청와대에 단계별로 상세히 보고했고, 청와대는 수시로 지시를 내리며 꼼꼼하게 관리했다.
○ 481일간 139회 보고·지시 주고받아
동아일보가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부장판사 김선희)의 이 사건 1심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환경부는 김 전 장관이 임명된 지 6일 만인 2017년 7월 10일부터 2018년 11월 2일까지 481일간 이메일과 전화, 방문 등의 방식으로 114회에 걸쳐 청와대에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청와대는 25차례 관련 지시를 내렸다. “후보자가 추천됐으니 채용될 수 있게 지원하라”, “자격 미달이어도 경력 추가할 거 최대한 받아 자격요건 충족되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판에서 “과거 관례로는 장관이 추천한 후보자가 내정되고 후임 인선을 위한 절차가 진행됐지만 새 정부 들어와서는 청와대에서 추천하는 것을 원칙으로 진행했다”고 진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청와대는 공공기관 임원 내정자를 정할 때 조현옥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이 주재하는 ‘인사간담회’를 열어 단수 후보를 정한 뒤 환경부에 통보했다. 인사간담회에는 조 전 수석비서관 외에 해당 부처 소관 수석비서관이 참여했고 신 전 비서관이 실무를 총괄했다.
검찰은 이 인사간담회에서 낙하산 인사 관련 밀실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영장이 기각되면서 조 전 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수사로 진척되지 못했다. 신 전 비서관은 두 차례 검찰 조사에서 “인사간담회 관련 내용은 보안상 얘기할 수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정상적인 공모 절차를 진행할 경우 청와대나 환경부 추천 인사가 탈락할 위험성 때문에 공모 절차를 무력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르면 임원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공정하게 평가해 복수 후보를 추천하고, 장관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 공소시효 7년…“수사 끝난 게 아냐”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법조계에서는 청와대 윗선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동부지검은 조 전 수석비서관 등 윗선까지 수사하려 했지만 법원의 영장 기각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지 못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는 끝난 게 아니라 수사 중이라고 봐야 한다”며 “법원에서 신 전 비서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그렇다면 당시 인사수석비서관 등이 어디까지 개입됐는지 밝히는 게 형평에 맞는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공소시효가 7년이라는 점에서 재수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해인 2017년 7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발생했다. 또 이 사건 공범의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기소된 2019년 4월부터 두 사람에 대한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공소시효가 중단된다.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권이 바뀐 후에 수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신희철 hcshin@donga.com·박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