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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이 쓴 유서, ‘중형 선고’ 부메랑이 되다

입력 | 2021-02-14 09:14:00

결혼 등 향후 생활문제로 다투다가 동거남을 살해한 40대에게 법원이 징역 16년을 선고했다./뉴스1 DB


“억울합니다. 판사님”

객관적인 증거 등을 제시하며 재판부가 중형을 선고하자 A씨(49·여)는 재판부를 향해 이 같이 외쳤다. 재판 마지막까지 A씨는 범행을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았다.

재판에서 A씨는 “B씨(51)가 나와 다투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었다”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B씨가 많이 힘들어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B씨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자, 죽었다고 생각해 함께 따라 죽을 생각으로 B씨의 상처에 있던 흉기를 뽑은 뒤 유서를 작성하고 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의 주장과 다르게 많은 객관적 증거와 증인들의 진술 등은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A씨가 B씨를 살해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4일 전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김유랑)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너랑 결혼하지 않아” 격분, 동거남 살해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경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5일 오후 “아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A씨와 B씨 모두 아파트 안에 쓰러져 있었다.

A씨와 B씨는 인근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지만 B씨는 결국 숨졌다. A씨도 팔 등을 크게 다쳤다.

A씨와 B씨는 6년간 사귀던 사이로 사실혼 관계였다.

법원 등에 따르면 사건 당일 지난해 8월 5일 새벽 A씨와 B씨는 결혼 등 향후 생활문제로 다퉜다.

다투던 중 B씨는 A씨에게 “너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 헤어지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순간 A씨는 B씨에 대한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꼈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한 A씨는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침대에 누워있는 B씨를 찔러 살해했다. 이후 A씨는 유서를 작성한 뒤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찰은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A씨를 체포했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던 점, 죽은 B씨의 상처 등 모든 증거들이 A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는 “B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지 살해하지 않았다”며 살인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유서에 드러난 그녀의 ‘살해동기’

“죽어라 보필했고 아낌없이 주고 품었다. 내 집을 경매 넘기고 다시 찾아와 회사에 소속을 시켜놓고 잔인하게 나를 유린하고 농락하고 협박하고 오늘도 끝내 타협점을 좋게 찾아주던 진심이 짓밟히지는 말았어야 했다. 자그마치 6년”

동거남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가 쓴 유서 일부다. A씨는 자신이 청혼을 했던 동거남 B씨가 경제적 어려움에 극단적 선택을 하자 따라 죽기 위해 작성한 유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서에는 A씨가 B씨를 원망하는 내용이 대부분일뿐 B씨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은 담지 않았다. 재판부도 이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A씨)의 주장대로 피해자가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자살을 했고 이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피고인이 청혼을 하였던 피해자(B씨)의 자살을 보고 이를 비관해 피해자를 따라 동반자살을 시도하였다면 유서 내용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피고인이 피해자를 원망하며 피해자를 죽인 뒤 자살하려는 취지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재판부는 Δ피해자의 목 부위 상처에 주저흔(망설인 흔적)이 없는점 Δ피해자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는 증인들의 진술 Δ사건 현장 감식 결과 등을 들어 A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양형과 관련해서는 “살인죄는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다. 또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점, 피해자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중형선고가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피고인의 범행 경위에서 참작할 부분이 있는 점, 초범인 점 등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며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전북=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