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가방에서 졸업장과 졸업앨범부터 꺼냈다. 졸업앨범 속 아이들은 나름 저마다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아이는 장래희망이 프로게이머인지 한 손에 마우스를 들고 있었다. 또 어떤 아이는 가슴에 ‘논어’를 품고 있었다. 또 어떤 아이는 해리 포터처럼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아이 덕분에 약 30년 전 졸업앨범 후기에 가장 큰 글씨로 장래 희망을 ‘킬러’라고 썼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무렵 그 친구는 ‘영웅본색’의 주윤발(周潤發·저우룬파)에 미쳐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끝내 주윤발 같은 킬러가 되지 못하고 은행원이 되었다.
아이의 졸업앨범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하면 마치 내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에게 있는 힘껏 아는 척을 했다. 아는 척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이따금 그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동안 아이만 성큼 자란 줄 알았더니 그 아이들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성큼 자랐다. 그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곁에서 띄엄띄엄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그런데 졸업앨범 단체사진은 생각보다 단출해 보였다.
문득 지금으로부터 30년 뒤엔 어떨까 싶었다. 그때쯤 아이도 나처럼 학부모가 됐을까. 자기 아이와 졸업앨범을 같이 펼쳐 보며 해리 포터 코스프레 하던 엉뚱한 친구를 떠올릴까. 아니, 그전에 지금의 아이들은 지금의 어른들처럼 훗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을까. 넘쳐 나던 아이들을 한 학급에 대충 구겨 넣었던 과거가 그립거나 좋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이 없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싶었다는 얘기다.
권용득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