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요시로 2021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84)이 성(性) 차별 발언으로 물러난 뒤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남녀 평등 논쟁이 일고 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이번 사건이 일본의 남성 우월주의 문화를 바꿀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15일(현지 시간) 일본이 세계경제포럼(WEF)의 양성평등 순위에서 121위에 오른 국가라고 보도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다는 의미다. 앞서 성 차별 발언으로 비판을 받은 모리 위원장은 자신의 사퇴를 발표하면서도 언론이 사태를 부풀렸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FT는 이런 모습을 “일본 정치인의 표준적인 절차”라고 꼬집었다. 일본 정치인들은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해서는 적게 사과하고, 대신 언론을 더 많이 공격한다고도 설명했다. 과거에는 이런 식의 대응이 대중에게 통했고 정치 경력에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리가 위원장을 사퇴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며 상황이 바뀌었다.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일본에서는 과거 성 평등 이슈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미국 등 전 세계를 휩쓴 ‘미투(Me too)’ 운동도 일본에서는 별 반향이 없었다. 때문에 “일본은 미투 운동의 불모국”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야요 오카노(Yayo Okano) 교토 도시샤대 교수는 “이번에는 여성들이 매우 빠르게 그들의 의견을 온라인에 표출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주도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여론은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그제서야 일본 언론도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미투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말이다. 모리 사건과 관련해 도쿄의 EU(유럽연합) 대사관은 트위터에 ‘침묵하지 말라’고 올리기도 했다.
FT는 모리 발언이 문제가 됐던 이달 5일 주요 올림픽 후원 기업들에게 입장을 물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입장을 밝히길 거부했다고 전했다. 유일하게 노무라 투자은행만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이후 사태가 점점 커지고 모리가 4일 “발언을 철회하지만 사퇴할 생각은 없다”며 기자회견을 했을 땐 후원 기업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한 후원 기업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우리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모리 위원장의 발언은 상황을 ‘단순 실수’에서 ‘심각한 문제’로 바꿔놨다”고 비판했다. 이런 와중에 침묵을 지켰다면 사태를 묵인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모리 위원장은 3일 조직위 회의에서 여성 이사 비율을 늘리자는 안건에 대해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시간이 배로 걸린다”며 “여성은 경쟁의식이 강해서 누구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하면 자신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