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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확산되는 스포츠계 학폭 파문, 면피성 대책으론 못 막는다

입력 | 2021-02-17 00:00:00


배구계의 학교폭력(학폭) 파문이 커지고 있다. 가해 사실을 인정한 이재영 이다영 송명근 심경섭 선수는 국가대표 선발에서 제외되고 팀 경기에도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이들 외에 다른 배구선수에게 학폭을 당했다는 폭로도 나오고 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일반인들 사이의 학폭 사례도 올라오고 있어 ‘학폭 미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체육계 폭력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책이 나왔다.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일명 최숙현법)이 19일 시행된다. 폐쇄회로(CC)TV 설치 추진, 인권침해 피해자 보호 강화 등의 내용이다. 앞서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성폭행 및 폭력 사건 이후에는 체육계 인권 사건을 전담하는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됐다. 하지만 체육계 폭력은 계속되고 있고, 대부분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학생선수 인권상황 조사에서 응답자의 14.7%가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중고교 선수 중 79.6%는 아무 대처를 하지 않거나 소심하게 불만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보복 등 사후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성적 지상주의 풍조 속에서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폐쇄적인 체육계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학교부터 국가대표 과정 전반까지 폭력이 근절되도록 각별하게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비난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한 면피성 대책으로는 체육계 폭력을 막을 수 없다. 합숙 시스템 등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함께 ‘운동하려면 맞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뿌리 뽑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피해자가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체육계를 넘어 사회 전반의 폭력 실태를 점검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