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4人 심층토론
“지역균형 뉴딜의 미래를 말하다”

전문가들은 지역균형 뉴딜의 중점 과제로 지역별 광역플랫폼 조성을 꼽는다. 수도권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지역 생활권 및 경제권을 만들어야 국가의 균형발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과 이학영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전호환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은 8일 국회에서 만나 지역 균형뉴딜 성공 전략을 논의했다.
―지역균형 뉴딜은 한국판 뉴딜의 핵심으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피할 수 없는 길이다. 한국형 뉴딜과 지역균형 뉴딜의 의미를 짚는다면….
▽서 위원장=한국형 뉴딜의 핵심은 ‘사람’과 ‘상생’이다. 새로운 인재를 키우고 국가 자원이 특정 지역에 쏠리지 않도록 해 균형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지역에서 성장동력을 찾지 않으면 더 이상의 도약이 어렵다. 기업과 각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대학이 성장동력을 발굴하면 행안위는 이를 실행할 사람과 예산을 적절하게 배치하도록 노력하겠다.
▽김 사장=한국형 뉴딜은 ‘저탄소 경제’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출발점이다. 한전은 에너지 기업이자 본사가 지역에 위치한 공공기관으로서 지역균형 뉴딜, 그린 뉴딜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느낀다. 2025년까지 5조8000억 원을 투자하는 ‘에너지 뉴딜 추진 계획’도 그 연장선이다. 청정에너지 확산, 녹색산업 생태계 활성화 등 4대 분야 및 43개 과제를 추진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다.
▽전 위원장=지역균형 뉴딜의 핵심은 교육이다. 2021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에서 부산 모든 사립대가 사실상 정원 미달이다. 부산이 이 정도라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 상위 20개 대학 중 18곳이 수도에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수도권 합계 출산율이 0.6명(지난해 기준)까지 떨어져 학령(學齡) 인구는 갈수록 줄어든다. 지역의 대학이 무너지는 것은 국가 붕괴나 마찬가지다. 진정한 국가 균형발전은 교육의 균형발전에서 온다고 믿는다.
―지역 간 경쟁을 고려해 기계적으로 분배하는 지역 균형발전으로는 ‘집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광역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상임위원장으로서 어떤 구상을 하고 있나.
▽서 위원장=경쟁이 아닌 경쟁력을 이끌어내려면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수도권 집중을 분산시킬 수 있는 초광역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생활권과 경제권을 중심으로 권역별 발전 전략을 만들어야 수도권도 살고, 지역도 발전할 수 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는 광역 플랫폼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가덕도 신공항 등 필수 인프라가 빨리 구축돼야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투자 심사, 지방채 발행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규제 문턱을 낮추는 데 힘쓰겠다.
▽김 사장=지방분권이 중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지방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도록 권한과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중앙 부처들이 돈 나눠주는 데만 재미를 붙여선 안 된다. 그렇게 추진되는 사업은 성공률도 낮다. 지방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업에 반영해야 한다.
8일 국회에서 전호환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이학영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김종갑 한전 사장(왼쪽부터)이 국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지역균형 발전과 대학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donga.com
▽김 사장=공공기관이 이전한 혁신도시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기관과 관련된 산업을 중심으로 혁신도시를 각 지역 플랫폼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지방정부, 공공기관, 기업이 모이는 클러스터를 조성하면 집적효과와 함께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진다. 한전은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에너지 관련 기업을 모아 신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위원장=혁신국가로 인정받는 핀란드는 지역 주력 산업이 선정되면 관련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을 연결시키는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지역에서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하면 정부와 기업이 출자해 첨단 과학단지도 만든다. 한국은 지난해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RIS)’을 도입해 지역혁신 플랫폼의 첫걸음을 뗐다. 경남의 17개 대학이 학사 과정을 연계한 ‘경남공유대학(USG)’은 좋은 시도다. 정부가 이런 토대를 폭넓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지역 플랫폼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다.
―한전이 추진 중인 에너지밸리 조성과 한국에너지공대(한전공대) 설립도 지역균형 뉴딜의 대표적 사례다.
▽김 사장=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에너지밸리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 중이다. 현재 501개 기업을 유치해 2조1596억 원의 투자협약을 맺었다. 1만1158명의 고용 효과를 내고 있다. 앞으로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 핵심은 신기술을 개발하고 창업까지 꿈꿀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한국에너지공대가 다음 단계로 가는 열쇠다. 현재 한국에너지공대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중국 최고의 혁신 클러스터로 꼽히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클러스터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40여 개 대학이 밀집해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이 위원장=지역 균형발전이 잘 이뤄진 핀란드는 혁신 클러스터가 있는 지역에서 인력의 3분의 2를 충원한다. 산학 연계가 잘 갖춰져 있어 졸업 논문의 90%는 기업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한국은 기존 교육 과정으로는 현장맞춤형 인재를 배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에너지공대가 다른 모델을 보여주면 교육계에도 자극이 될 수 있다. 아직 법안이 통과되진 않았지만 국회에서도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서 위원장=프랑스 남부 니스 인근에 조성된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유럽 최대의 첨단 과학 연구단지다. 수도권에 집중된 국토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추진됐다. 기업 1500여 개, 연구소 70개 등이 모여 집적 효과를 내고 있다. 지방정부가 개발과 운영을 맡고, 정부는 재정 지원을 통해 우수 인재를 끊임없이 끌어모으고,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로 시너지를 만든다. 한국도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균형 뉴딜이 성공하려면 지역에 기업과 청년이 유입돼야 한다.
▽전 위원장=오늘날 미국의 국력은 연구 중심 대학에서 나왔다. 독일의 경우 지방의 국책 연구소들과 대표적인 9개 공과대학(TU9)이 시너지를 만든다. 에너지 분야 전문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신설되는 한국에너지공대는 지역균형 발전은 물론 국가 성장동력 역할을 해야 한다. 에너지 분야의 세계 시장 규모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한국에너지공대는 여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인재를 잘 육성해야 한다.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시기에 대학을 세우는 것이 부담 될 수 있지만 교육과 연구, 산학협력 등 한국 대학이 부족한 영역에서 다른 대학들의 롤 모델이 되길 바란다.
―한국에너지공대가 출범하면 어떤 인재를 양성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김 사장=무엇보다 가능성 있는 재목(材木)을 뽑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수능 점수로만 뽑는 게 아니라 성적이 덜 좋아도 창의적인 사람, 한 분야에 미쳐 있는 청년들을 뽑으려고 한다. 강의보다는 연구 프로젝트로 학점을 따고 졸업하는, 기존에 없는 모델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학과별 칸막이도 없애 에너지 전 분야를 자유롭게 연구하는 풍토를 만들고 싶다. 한전의 고급 연구소인 동시에 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위원장=국내외를 막론하고 좋은 인재를 끌어오길 바란다. 가령 동남아시아의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가는데 한국에너지공대가 이런 인재들을 데려올 수도 있다. 이들을 위한 쿼터제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런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 한다. 가령 요즘 오디션이 유행인데 산업 오디션을 만들어서 기술심사 과정을 보여주고 창업으로 이어지는 이벤트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진행=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정리=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