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선수촌 식지 않는 땀방울
한국 양궁대표팀 남녀 선수들이 충북 진천국가대표팀선수촌 양궁장에서 일렬로 서서 시위를 당기고 있다. 양궁대표팀을 포함한 각 대표팀 선수들은 설 연휴도 반납한 채 훈련에 매진했다. 대한체육회 제공
양종구 논설위원
4년마다 열리는 도쿄 여름올림픽이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연기된 가운데 아직도 개최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금메달을 향한 질주를 멈출 수가 없다. 대표팀 선수 및 지도자 500여 명은 선수촌과 촌외에서 올림픽을 위해 최선을 다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표선수단 취재가 금지돼 신치용 선수촌장(66) 및 각 종목 지도자들을 통해 현장 분위기를 들어봤다. 한국은 양궁과 유도, 태권도, 레슬링, 펜싱 등에서 금메달 7개 이상 획득을 목표로 도쿄 올림픽(7월 23일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목표는 금메달”
올림픽 때면 매번 금메달을 획득하는 효자종목 양궁대표팀 선수들은 “연휴 때 쉬어도 된다”는 선수촌장의 권유에도 선수촌에 남아 훈련했다. 박채순 양궁대표팀 총감독(56)은 “우리 모두는 무조건 올림픽은 열린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하고 있다. 선수들과 자주 회의하면서 언론에서 올림픽 개최 불가능 소식이 나오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최종 결정될 때까지 열심히 하자”고 다독이고 있다.
양궁대표팀은 설 연휴 동안 단체 훈련은 없이 개별 훈련을 했는데 모든 선수가 매일 훈련했다. 개별 훈련은 쉬어도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일부 남자 선수들은 설 전날 ‘1000발 쏘기’를 했다. 단체로 훈련할 때 개인당 하루 400∼450발을 쏘니 그 배 이상을 과녁에 맞힌 것이다. 박 감독은 “14시간 정도 쏘아야 하는 훈련”이라고 했다. 매일 새벽 달리기로 아침을 열고 코어 웨이트트레이닝, 오전 오후 3시간씩 실거리 활쏘기, 그리고 오후 5시 체력훈련까지 소화하는 강훈련 속에 좀 쉴 만도 하지만 선수들은 연휴 내내 활시위를 당겼다.
양궁은 국내 대표 선발전 통과가 곧 메달이라고 할 정도로 태극마크를 달기 어려운 종목이다. 올림픽에선 리커브만 열리는데 현재 2차 대표선발전까지 마쳐 남녀 8명씩 훈련하고 있다. 3월 말 남녀 20명씩 참가하는 3차 선발전에서 다시 8명씩을 뽑고 4월 말까지 2∼3차례 자체 선발전을 통해 최종 남녀 3명씩을 가린다. 지금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현재 남자는 김우진(29·청주시청), 여자는 강채영(25·현대모비스)이 개인전 금메달 후보로 꼽히고 있다.
방역당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방침에 따라 1200명이 수용 가능한 진천선수촌도 14일까지는 선수와 지도자 250명 이하만 입소할 수 있었다. 선수촌에서 약 180명, 선수촌 밖에서 360명이 훈련했다. 거리 두기 단계가 낮아져 이젠 400∼5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게 됐다. 약 210명의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고 지도자를 포함하면 400명 안팎이 선수촌에서 훈련해야 한다. 현재까지 19종목 157명이 올림픽 티켓을 확보했다. 6월까지 계속 올림픽 예선전이 열린다.
“올림픽이 열리기는 할까요?”
열심히 훈련을 하지만 선수들의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선수들이 선수촌장이나 지도자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질문이다. 4년간 열심히 준비했는데 지난해 코로나19로 1년 연기됐을 때 노장 선수들은 가슴을 쳐야 했다.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1년 연기라니. 신치용 선수촌장은 “이름을 거론하긴 힘들지만 1년 연기됐을 때 심리적으로 큰 좌절을 겪은 선수들이 있었다. 흔들리고 망가지는 게 눈에 보였다”고 회상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아쉽게 동메달에 그친 레슬링 김현우(33·삼성생명)의 실망감도 컸다고 했다. 체조의 신 양학선(29·수원시청), 여자배구의 김연경(33·흥국생명)에게도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다. 이들에게는 도쿄 올림픽 취소는 평생의 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이 어린 선수들에게는 1년 연기가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 노장 라이벌이 한 살 더 먹을 때 1년 훈련을 더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파트너 없어 정상적 훈련 힘들어”
코로나19는 대표팀 선수들의 훈련 방식도 크게 바꿔 놓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선수촌 밖 훈련이 많아진 데다 유도와 레슬링, 권투 등 투기 종목의 경우 훈련 파트너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배상일 여자유도대표팀 감독(52)은 “투기 종목의 특성상 다양한 파트너가 있어야 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여자의 경우 18명으로 체급당 2, 3명밖에 없어 제대로 훈련을 못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가 스포츠에도 큰 악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바뀐 환경에 적응하며 저마다의 올림픽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각종 대회 취소로 무기력증… 2주 자가격리로 경기력 저하이민호 대한육상연맹 경보대표팀 코치(55)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각종 대회가 취소되면서 선수들이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아쉬워했다.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검증할 대회에 맞춰 훈련을 하는데 번번이 대회가 없어지자 ‘훈련은 해서 뭐 하나’라는 분위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 코치는 “경보의 경우 올 2월 대회도 없어졌고 3월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열심히 훈련하다가 다시 처음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선수들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보와 마라톤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국내에서 단 하나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공인 경기를 하지 못했다.
여자유도대표팀 김잔디(왼쪽)가 진천국가대표팀선수촌 유도장에서 파트너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한국 유도대표팀은 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도하마스터스유도대회에 출전하고 돌아온 뒤 2주간 자가 격리를 했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른 것이지만 향후 경기력에는 큰 지장을 줬다. 집에서 개인 훈련을 하지만 한계가 있는 데다 투기 종목의 특성인 파트너 훈련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배상일 여자유도대표팀 감독(52)은 “근력이 경기력을 좌우하는 종목의 경우 강도 높은 훈련을 하다가 중단하면 그 즉시 경기 근력이 약해진다. 2주 자가 격리를 하면 그 두 배 이상 다시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경기 근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도를 포함해 많은 종목이 해외 대회에 출전해 포인트를 쌓든지 예선전을 벌여야 한다. 해외에 갈 때마다 자가 격리를 한다면 경기력을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다.
유도대표팀과 대한체육회의 이의 제기로 방역당국은 각종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 면제서를 받을 경우 1주 자가 격리 후 1주 소속팀 훈련 또는 코호트(격리 대상 집단) 훈련으로 대신할 수 있게 했다. 전문가들은 완화된 조치를 반기면서도 훈련을 계속 이어갈 방법을 더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실장(운동생리학)은 “강원 태백선수촌, 서울 태릉선수촌 등 다른 곳에 대표팀 클린존을 만들어 코호트 훈련을 하게 하면 중단 없이 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