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는 1960년대 말 비아프라 내전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삶이 나아졌을 때 내가 가진 것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생각을 갖게 됐죠.” 2010년 세계은행 집행이사였던 오콘조이웨알라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개발경제 전문가가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나이지리아의 작은 마을 통치자인 오비(왕)의 딸로 태어난 그는 독립과 내전의 혼란 속에서 하루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미국 유학은 화려한 이력의 시작이었다. 하버드대 우등 졸업, 매사추세츠공대(MIT) 석·박사를 거쳐 세계은행에서 20여 년간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넘버 2’ 자리인 집행이사까지 올랐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부름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재무장관을 지냈고 잠시 외교장관을 맡기도 했다. 당시 그는 부정부패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사 기질을 보여줬고, 그때 얻은 별명이 ‘오콘조-와할라’였다. 와할라는 현지어로 골칫거리(trouble)를 뜻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의 친중(親中) 성향을 문제 삼았다고 하지만, 그가 민주당 측과 가깝다는 정치적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아프리카 소년병 이야기를 다룬 소설(‘Beasts of No Nation’) 저자인 그의 큰아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교통장관이 된 피트 부티지지의 하버드대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의 정권교체가 마무리될 때까지 침묵하다 이달 초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미국에 불가분의 동맹 관계를 보여줬는지는 모르지만 그간 쏟아진 국제사회의 눈총이 한국 외교에 많은 의문표를 던졌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