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韓日합의 무효” 선언했던 文 국민정서 자극해 선거에 이용하고 잘못은 반성 없이 관계복원 나서 무책임한 정치공학 국민이 알게 됐다
김순덕 대기자
“남북은 많은 문제에서 한배를 타고 있다”는 대통령 신년사처럼 이 땅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심어놔서 얽히고설켜 버린 콩 줄기가 많다. “빨리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청와대가 밝힌 한일관계도 그중 하나다.
신년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2015년도 양국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가 공식 합의였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번 3·1절 기념사에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의 전향적 해결책을 담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문 정권 출범 때부터 입이 아프게 양국관계 개선을 촉구해온 ‘토착왜구들’로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국민 앞에 문 대통령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는 중에 위안부 판결 문제가 더해져 곤혹스럽다”고 했다. 7월 도쿄 올림픽이 열리면 남북 대화와 북-미 협상 자리에 팥죽을 잔뜩 쑤어낼 작정이었는데 웬 콩이냐는 소리로 들린다.
사인(私人) 간에도 자기가 콩 심은 걸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16일 문 대통령은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주택 가격과 전월세 가격을 조속히 안정시키는 데 부처의 명운을 걸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2·4대책 전까지 24번이나 투기 억제라는 명분으로 공급억제책을 쏟아낸 대통령은 딴 나라 대통령인 모양이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던 문 대통령이 왜 사유재산 침해로 위헌 소지가 있는 대책에 자기 명운은 안 걸고 국토부의 명운을 걸라는 건지 무책임하다.
문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명운을 걸라던 일이 또 한 번 있다. 2년 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클럽 버닝썬, 고 장자연 씨 사건 의혹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구체적 사건을 콕 찍어 지시한 일이다.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면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 발언은 지당하다. 그렇다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원전 조기 폐쇄 사건에 대해선 왜 검찰 조직까지 흔들면서 진실 규명을 막는지도 말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문 정권의 정치적 술수를 이제 다수 국민이 알아버렸다는 사실이다. 선거 코앞에 불거진 전임 정권의 민간인 사찰 의혹쯤엔 놀라지도 않는다. 집권세력엔 적용되지 않는 선택적 정의에 분노하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절망하고, 이웃 나라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할 수 없게 된 데는 문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스스로의 명운을 걸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사람은 문 대통령 자신이다. 대통령이 죄 없는 정부 조직만 명운을 걸라는 바람에 대한민국 법치주의도, 민주주의와 경제도 무섭게 흔들리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