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흥국생명 출신 왁싱숍 실장 공윤희
왁싱숍 실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 흥국생명 배구선수 공윤희가 이달 초 자신이 일하고 있는 왁싱 전문숍에서 왁싱 도구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흥국생명 시절 ‘배구선수’ 공윤희. 성남=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KOVO 제공
프로배구 여자부 6번째 시즌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첫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달라진 마음으로 새 시즌을 준비하려는데 왈칵 겁부터 났다. 팬들 앞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 코트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3년 넘게 남몰래 해오던 고민이었다.
무작정 배구를 그만뒀다. 같이 땀 흘렸던 동료들은 하나같이 놀랐다. 딱 2주를 쉬고 국가 공인 피부미용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왁싱숍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 12년 동안 배구 한 우물만 파다가 체육관을 처음 벗어나는 두려움은 컸지만 모처럼 설렘을 느꼈다. “초등학교 6학년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2013∼2014시즌 여자부 신인드래프트 전체 1라운드 1순위. 2018∼2019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난 전 흥국생명 선수 공윤희(26·179cm)에겐 늘 이런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고교 졸업 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프로 무대에 뛰어든 뒤 6시즌 동안 남긴 성적은 149경기 417세트 226득점(공격성공률 28.11%). 배구 선수로서의 삶은 분명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합 우승을 맛보긴 했지만 늘 조연에 가까웠다. 주 포지션(라이트)이 외국인 선수와 겹치면서 출전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레프트로의 변신도 시도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많은 운동을 하면서 달고 살던 만성 어깨 통증도 그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한 인생에선 당당히 주인공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달 초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신의 근무지(아나덴 슈가링왁싱 분당서현점)에서 만난 공윤희는 “선수를 하면서도 행복했지만 훈련과 경기가 이어지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시간이 진짜 안 갔다. 지금은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비로소 한 명의 어른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 주로 다니던 왁싱숍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1년 만에 실장으로 한 지점을 책임지게 됐다. 배구 유니폼 대신 걸친 앞치마가 제법 잘 어울렸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운동 후배들의 상담 의뢰도 이어지고 있다. 공윤희는 “운동을 그만두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수입은 얼마나 되고 자격증은 어떻게 따야 하는지 질문이 쏟아진다. 무엇보다 ‘나는 운동밖에 할 줄 몰라’라고 스스로의 능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근 그가 한때 몸담았던 흥국생명에서 학교폭력 논란과 불화설 등이 불거진 상황. 배구계에서는 그동안 성적 만능주의에 가려져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개인의 인권과 행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공윤희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선수 시절에는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즐거움이란다. 앞으로 목표는 해외에 왁싱숍을 내는 것. 예약 손님이 올 시간이 다 됐다며 분주해지는 그의 표정에서 행복이 느껴졌다. 제2의 코트에선 이미 맘껏 도약한 듯했다.
성남=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