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진학한 당대 최고 공격수 “이런 생활 못해” 선수촌 이탈 괘씸죄에 결국 코트 떠나 교편 등교 요구한 수영 샛별 장희진도 중2때 제명돼 올림픽 못 나갈뻔 진우영은 학업-운동 병행 ML진출
박인실의 제명 소식을 전한 본보 1976년 4월 28일자 지면.
학교폭력 폭로 사태가 배구계를 강타한 뒤 ‘합숙 훈련’ 제도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합숙 훈련 시스템은 도입 초기인 1970년대부터 이에 반발하는 선수가 계속 등장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유야무야되면서 현재까지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주공격수였던 박인실(69)은 1976 몬트리올 올림픽 개막을 석 달 앞둔 그해 4월 “더 이상 이런 짐승 같은 생활을 못 하겠다”며 태릉선수촌을 떠났다. 박인실은 서울 중앙여고 졸업 후 곧바로 실업팀에 입단하는 대신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로 진학한 ‘공부하는 선수’였다. 많은 원로 배구인은 국제대회 등에서 선수단 통역까지 맡았던 똑똑한 선수로 박인실을 기억한다.
합숙 훈련을 거부한 죄로 박인실은 대한민국배구협회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가 “김연경 이전 한국 최고 여자 공격수”라고 평가한 박인실은 그렇게 코트를 떠난 뒤 잠시 교편을 잡다가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이제는 아예 한국에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미국식 교육’ 시스템을 선택하는 선수가 늘고 있다. 경북 문경에 자리한 글로벌선진학교 출신으로 2018년 미국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입단에 성공한 진우영(20)이 대표적이다.
미국식 커리큘럼에 따라 운영되는 글로벌선진학교는 야구부뿐 아니라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야구부 학생 역시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영어로 수업을 듣고 공부해야 한다. 야구부 일과에 아예 ‘숙제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을 정도다.
스포츠 전문가들은 “합숙 훈련은 선수가 자기가 원하는 만큼 훈련할 권리를 빼앗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선수 인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합숙 훈련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