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10〉슬픈 판타지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던 주인공 세실리아(왼쪽)는 영화 속 등장인물인 톰 백스터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고 행복해한다. 20세기 스튜디오 제공
우디 앨런 감독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년)에선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판타지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세실리아는 무능한 데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남편에게 늘 상처받는다. 그녀는 오직 영화로부터 위안을 얻을 뿐이다. 그녀는 남편의 불륜을 확인하고 집을 나온 뒤 ‘카이로의 붉은 장미’란 영화를 보고 또 보며 마음을 달랜다. 그녀에게 영화 속 멋진 모험가 톰 백스터가 스크린 밖으로 빠져나와 사랑을 고백한다. 자신을 존중하는 백스터에게 감동한 세실리아는 영화 속 세계로 들어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판타지를 한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시인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1563∼1589)의 작품이다.
남다른 시적 재능을 타고난 허초희는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지만 부부 사이가 원만치 못했다. 시어머니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결혼생활은 더 불행해졌고, 어린 남매를 연이어 잃는 비극마저 찾아왔다.
이 시는 1585년 시인이 외삼촌 집에서 슬픔을 달래고 있을 때 지었다. 어느 날 시인은 꿈속에서 무지개 같은 구름이 덮인 산에 올랐다. 바위 사이 폭포는 옥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아름다운 새들이 날고 있었다. 그곳은 신선들이 사는 광상산으로, 시인을 맞이한 두 선녀의 부탁으로 시를 지었다.
세실리아가 영화 속 세계에서 받은 각별한 대접은 시인이 신선 세계에서 극진한 예우를 받은 것처럼 불행한 현실과 대조된다. 하지만 판타지가 끝나고 남는 건 비참한 현실뿐이다. 시인이 꿈에서 깬 것처럼 세실리아도 우여 곡절 끝에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영화와 한시의 결말은 다르다. 세실리아는 계속 영화에 빠져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뿐이지만, 시인은 주저앉지 않는다. 시인은 시에 붙인 서문에서 자신의 꿈속 신선세계 유람을 이백의 시(몽유천모음유별·夢遊天모吟留別)에 넌지시 견준 바 있다. 이백의 시는 권력에 굴종하기보다 속세를 떠나 신선같이 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시인 역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고수하겠다는 선언같이 읽힌다. 선화(仙化)는 도교에서 죽음을 일컫는 말로, 죽어서 신선이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시에서 암시한 죽음도 인간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신선세계로의 귀환을 염두에 둔 듯 결연하다.
허초희는 죽은 뒤에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조선시대 남성 지식인들의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죽음도 그녀를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녀의 판타지가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