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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귀순→ 철책 귀순→ 오리발 귀순… 軍, CCTV에 3번 포착됐는데도 몰랐다

입력 | 2021-02-18 03:00:00

“첫 발견” 3시간전부터 CCTV에… 머구리 잠수복 입고 6시간 헤엄
서해 월북처럼 해안 배수로 통과
서욱 국방 “北남성 ‘민간인’ 진술”




16일 동부전선인 강원 고성군 민간인통제선(민통선)에서 발견된 북한 남성 A 씨가 잠수복과 오리발을 이용해 6시간 동안 헤엄쳐 남하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해상과 육상의 경계망이 연이어 뚫린 ‘오리발 귀순’ 과정에서 A 씨는 군의 감시장비에 4차례나 포착됐지만 군은 최초 포착 시점으로부터 6시간이 지난 16일 오전 7시 20분경에야 A 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감시장비와 경계근무, 시설 등 육해상의 경계시스템에 차례로 구멍이 생기면서 동부전선이 눈 뜨고 뚫린 상황이 된 것. 육군 22사단이 관할하는 이 지역에선 2012년 ‘노크 귀순’, 지난해 11월 ‘철책 귀순’에 이어 ‘오리발 귀순’까지 연달아 발생했다. 관련 군 수뇌부에 대한 문책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씨가 군 폐쇄회로(CC)TV에 처음 포착된 시점은 16일 오전 1시 20분경. 앞서 군이 16일 민통선 검문소 CCTV에서 최초로 A 씨 남하를 인지했다고 밝힌 시점(오전 4시 20분경)보다도 3시간 전이다. 바다를 헤엄쳐 월남한 뒤 군사분계선(MDL)에서 3km가량 떨어진 육지에 올라온 그는 당시 고성군 통일전망대 인근에 잠수복과 오리발을 벗어뒀다.

군 당국은 현재까지는 열상감시장비(TOD) 등 해안 감시자산에 A 씨가 헤엄쳐 오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안 경계를 피해 육지에 오른 A 씨는 이후 해안 철책의 하단 배수로를 통과했다. 당시 이 배수로는 차단 시설이 훼손돼 있었다.

이어 이날 오전 2시 전까지 불과 40분 동안 A 씨는 군 CCTV에 모두 3차례 포착됐지만 군 당국은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후 2시간 넘게 A 씨가 국도 7호선을 따라 걸어와 MDL에서 약 5km 떨어진 민통선 검문소 CCTV에 포착될 때까지 사실상 아무런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 씨는 월남 과정에서 점퍼 위에 어민들이 해산물을 채취할 때 입는 ‘머구리 잠수복’을 착용한 뒤 끈을 졸라매 물이 몸 안으로 스며들지 않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동해 수온은 영상 8도 정도였다. 군은 20대인 A 씨가 6시간가량 헤엄쳐 남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은 이날 오전 4시 20분경 검문소 CCTV로 A 씨를 포착한 뒤에도 대침투경계령인 진돗개 ‘하나’를 오전 6시 반이 넘어서야 발령했다. 오전 7시 20분 검문소에서 500m도 떨어지지 않은 산기슭에서 검거된 A 씨는 당시 몸에 낙엽을 덮은 채 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A 씨가 “초기 합동신문에서 민간인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A 씨 포착 뒤 특공대가 투입됐음에도 북한군도 아닌 일반 북한 남성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3시간이 걸린 것이다.

A 씨가 막혀 있어야 할 배수로를 유유히 통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난해 7월 강화도 탈북민 월북 사건 이후 군이 약속했던 접경지역 배수로 등 시설물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 장관은 “국민들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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