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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시도男 혀 깨물어 절단한 여성, 56년 한 풀지 못했다

입력 | 2021-02-18 14:30:00


최 씨가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고 “정당방위에 따른 무죄를 인정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2020.5.6 ⓒ News1

56년 전 성폭행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되레 중상해 혐의로 처벌 받았던 최모 씨(75)가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부산지법 형사5부(권기철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6일 최 씨가 법원에 제기한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고 18일 밝혔다.

최 씨는 1964년 5월 6일, 당시 18세이던 자신을 성폭행 하려던 A 씨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어 1.5㎝ 가량 자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찰은 최 씨를 중상해죄로 구속기소 하고, A 씨는 특수주거침입 및 특수협박죄로 기소했다. A 씨가 말을 하지 못하는 불구가 됐음을 전제로 중상해죄를 적용한 것이다.

법원은 최 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 했다.

수십 년이 흘러 2018년 사회적으로 ‘미투’운동이 대두되자 최 씨는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해 5월 6일에는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최 씨는 A 씨가 수술을 받고 어눌하지만 말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고 “재판부의 판결이 잘못됐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최 씨는 재심에서 한을 풀지 못했다.

재심 재판부는 “최 씨 측이 제기한 증거만으로는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재심대상판결의 범죄사실인 중상해의 경우 발음의 현저한 곤란인데 전문가인 의사가 만든 상해진단서 등 객관적인 증거들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씨 측 주장처럼 A 씨가 말을 할 수 있었다고 보이지만, 언어능력에는 실제로 상당한 장애가 발생했다”며 “중상해죄 구성요건인 불구의 개념이 반드시 신체 조직의 고유한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만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성차별 인식과 가치관 변화 등에 비추어 볼 때 반세기 전 사건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직무상 범죄를 구성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도 기각 이유로 꼽았다.

다만 재판부는 기각 결정을 하면서도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

재판부는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논할 때 언제나 등장하고 회자됐던 ‘혀 절단’ 사건의 바로 그 사람이 반세기가 흐른 후 이렇게 자신의 사건을 바로 잡아달라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달라고, 성별 간 평등의 가치를 선언해 달라고 법정에 섰다”며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 측 변호인단은 “즉시 항고를 제기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