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지폐 환수율이 관련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1992년 이래 최저인 40%로 떨어졌다. 지폐 10장을 찍어내면 4장만 환수되고, 나머지 6장은 장롱이든 금고든 어딘가 꽁꽁 숨어버리는 것이다. 직전인 2019년 환수율이 71.3%였으니 거의 반 토막이 됐다. 지폐 중에는 5만 원권의 환수율이 24.2%로 가장 낮았다. 지난해 추석 무렵엔 5만 원권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중에 돌아야 할 돈이 사라지면 비용을 들여 또 화폐를 찍어야 한다.
▷한국은행은 환수율 하락 이유로 코로나 사태와 저금리를 지목했다. 코로나 사태로 현금 거래가 많은 대면 소비가 크게 줄었다. 지폐가 환수되는 주요 경로가 ‘대면 서비스업→시중은행→한국은행’인데 이 고리가 시작점부터 위축된 것이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예비용 현금을 쌓아두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저금리 탓에 은행에 맡겨봐야 이자가 거의 없는 것도 현금 보유를 증가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전자 결제가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현금을 쓰는 일이 줄고 있다. 게다가 디지털 화폐도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화폐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발행하는데 중국은 이미 디지털 위안을 실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전담조직을 꾸리고 선행 연구에 나섰다. 디지털 화폐는 코로나 등 전염병의 매개체가 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로 탈세나 돈세탁을 억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첨단 기술 덕분에 ‘잠자는 신사임당’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