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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민정수석 폭탄 투척 사건

입력 | 2021-02-19 15:37:00


신현수 민정수석이 열일했다. 일제시대 애국지사 폭탄 투척하듯, 청와대 한복판에서 사표를 투척함으로써 정권 핵심부의 음모를 백일하에 노출시켰다.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적지 않은 국민이 지금껏 문재인 대통령만은 선하고 정의롭다고 믿었다. 대통령은 선하고 공정한데 일신의 영달과 장기집권을 노리는 ‘운동권 청와대’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줄 알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막가파식 검찰 인사를 서슴지 않는 것도 대권욕에 사로잡힌 전 법무장관 추미애의 단독 플레이로 생각했다.

●검찰 장악은 대통령의 의지였다

그게 아님을 이번에 신현수가 드러냈다. 그가 반대한 ‘추미애·박범계 라인’ 인사가 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는 것은 이 모든 ‘검찰 장악’이 문 대통령 뜻임을 시사한다. 설령 법무장관 박범계가 대통령 재가 없이 발표했고, 문 대통령이 사후 승인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로 윤석열 턱밑에서 정권 관련 수사마다 견제구를 날린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을 신현수는 교체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이성윤을 그대로 둔 이번 인사는 계속 그 자리에서 어명(御命)을 받들라는 대통령 의지가 분명하다. 그것을 신현수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특히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백운규 영장 청구 직후 문 대통령이 격노했고, 신현수를 패싱 한 검찰인사가 승인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청와대는 ‘격노’가 출발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백운규는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도록 지시한 혐의다. 수사가 계속되면 “월성 1호기 언제 폐쇄되느냐” 물었던 문 대통령까지 칼끝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이 수사를 막는 것을 집권세력은 ‘문민통제’로 표현한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021년 2월 8일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대전지법 입구에서 신체 수색을 받고 있다.



●직을 걸고 직언하는 것이 민정수석
순장조로 채워진 임기 말 블루하우스에선 1년 3개월 뒤 대통령을 무사히 퇴임시키고, 그 뒤엔 조용히 잊혀지게 만드는 것이 최대 현안일 터다. 신현수가 비공개회의에서 특별감찰관을 빨리 둬야 한다, 선거 코앞에 과거 국정원 사찰 문제를 청와대가 언급해선 안 된다는 소리를 괜히 했겠나. 대통령 아들딸과 비서실 관련 의혹은 계속 터지는데 청와대에선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지면 대선도 위험하다며 정치 공학에나 골몰하니 기가 막혔을 거다.

민정(民情)수석이 본래 그런 자리다. 민간(民間)의 정서(情緖)까지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하는 자리. 서슬 퍼런 5공화국 시절 ‘땡전 뉴스’를 없앤 사람도 김용갑 당시 민정수석이었다. 당시 공중파 TV의 밤 9시 뉴스가 “9시를 알려드립니다. 땡” 하고 시보가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된다고 해서 땡전 뉴스였다. 김용갑이 “각하, 국민들이 땡전만 나오면 TV 꺼버립니다” 직언을 했더니 뜻밖에도 전두환은 그럼 민정수석이 조치를 하라고 했다는 거다.

신현수는 직(職)을 걸고 직언(直言)하는 대통령 참모의 참모습을 보였다. 정권 보위 수사로 뒤집힌 검찰 인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민심이 떠난다 싶어 안타까웠을 터다. 문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최측근인 만큼 그도 대통령이 진심을 받아 주리라 믿었을 듯하다.

●공직자들은 제자리에서 투쟁하시라

신현수가 알았던 문 대통령은 지금 없다. 죽창가나 부르는 전 민정수석 조국류의 극단주의자들에게 정권 자체가 공중납치당한 지 오래다(그러고 보니 문 대통령 역시 조국과 다름없는 극단주의자라는 생각이 든다).

‘조국의 아이들’ 이광철 민정비서관은 작년 말 공수처법이 통과되자 “조국 전 수석과 그 가족분들이 겪은 멸문지화(滅門之禍) 수준의 고통을 특별히 기록해 둔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검찰 인사가 문제가 아니다. 국정 기조 역시 조국류의 극단적 방향으로 치달리는 형국이다. 조국에 반(反)하다간 멸문지화의 고통이 올 수도 있다.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이광철 현 대통령민정비서관


신현수의 사표 투척으로 문 정권의 궤도 이탈을 만방이 알게 됐다. 그렇다고 모두가 박차고 나갈 순 없다. 일제시대엔 만주의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이 땅에서 제 할일 했던 사람도 애국자였다. 특히 공직자들은 최재형 감사원장처럼 제자리에서, 또박또박 자신이 할 일을 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에 충성했으면 한다.

공적 자리에선 “모든 일은 반드시 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라. 윗분의 지시는 서면으로 요청해 증거를 남기시라. 윗분이라면, 부하 직원에게 최대한 천천히 지시하는 것도 애국이 될 수 있다. 이상 미 중앙정보국(CIA)이 과거 독재국가 상공에서 살포했던 ‘자유의 전사 교범’ 내용이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