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무슨 꽃이야?/꽃 이름을 물으면/엄마는 내 손바닥에 구멍을 파고/꽃씨를 하나씩 묻어 주었네/봄맞이꽃, 달개비, 고마리, 각시붓꽃, 쑥부쟁이/그러나 계절이 몇 번씩 지나고 나도/손에선 꽃 한 송이 피지 않았네/지문을 다 갈아엎고 싶던 어느 날/누군가 내게 다시 꽃 이름을 물어오네/그제야 다 시든 꽃/한 번도 묻지 않았던 그 이름이 궁금했네/엄마는 무슨 꽃이야?/그녀는 젖은 눈동자 하나를 또/나의 손에 꼭 쥐어주었네―길상호(1973∼)
예전에는 가정이 출발점이라고 했다. 가정이 모여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가 모여서 세계가 된다고. 그러니까 가정은 씨앗 같은 거였다. 그걸 통해 우리는 멀리 나아가는 꿈을 꿨다. 멀리 갔다가 너무 힘들면 돌아오는 꿈도 꿨다.
지금은 가정이 출발점이 아니라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심정적으로 여기 말고 안전한 울타리는 없는 것 같다. 가정마저 무너지면 더 내어줄 땅도 없다. 그래서 가족이 가족을 해쳤다는 뉴스를 보면 더없이 분노하게 된다. 엄마가 자식을, 자식이 노모를 때리고 죽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잠을 잊게 된다. 코로나를 피해 다들 동굴 같은 집으로 파고드는데 이곳마저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 의지해야 하나.
짧은 겨울해가 지고, 봄은 남몰래 다가온다. 봄을 기다리는 우리는 누구에게 꽃이었던 적이 있을까. 과연 우리 마음에는 누구의 꽃이 잠들어 있을까.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