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보루’ 대법원장의 권위… ‘거짓말의 명수’ 저잣거리 팽개쳐 공직 소신 不在 속 신현수 참신 과분한 자리 꿰찬 ‘명수들의 천국’… 3류가 國政, 국민 피곤-민생 고단
박제균 논설주간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은 정치인이란 속성 때문에 정파성을 띠기 쉽고, 그것도 근래에는 큰 정치인이 의장이 되는 경우가 없어 민주주의 수호와는 거리가 멀다. 헌법재판소장도 있으나 사법부의 대종(大宗)은 역시 대법원이며 법관들도 헌재 재판관보다 대법관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우리 사회 최후의 권력이자 심판인 대법원이야말로 민주주의와 법치의 보루이며 그 수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존재다. 그 자리의 무게 때문에 현직 때는 물론이고 물러난 뒤에도 처신을 진중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상정하는 대법원장의 모습이다.
그쯤 됐으면 물러나는 게 정상이다. 다른 자리는 몰라도 대법원장은 그래야 한다. 그런데 물러나기는커녕 인사권을 악용해 ‘정권 방탄재판부’를 구성하는 그 낯 두꺼움. 두꺼워도 너무 두꺼워 보는 사람이 되레 낯 뜨거울 지경이다. 시쳇말로 패러디하면 지금까지 이런 대법원장은 없었다. 이것은 정치인인가, 장사꾼인가.
김명수 같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문재인 정부에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등장은 참신하다. 특히 문 정권 출범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는 대통령의 불통(不通)과 유체이탈 화법, 각료의 무능과 남 탓, 여권 인사의 위선과 내로남불, 관료의 영혼 가출은 전에 없던 실존적 고민까지 하게 만든다. 과연 인간이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런 정권에도 신현수 같은 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을 준다. 그가 청와대로 복귀하든, 안 하든 고위 공직자의 소신 행보를 본 지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일 터. 정권보다 국민을 섬겨야 하는 공복(公僕)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행동도 어느덧 ‘집 지키는 개’로 전락한 문 정권 공직사회에서는 희한한 일이 돼버렸다.
무엇이 김명수와 신현수를 가르는가. 인품 성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하나만 고르라면 실력일 것이다. 김명수는 자기편이라면 능력이나 도덕성, 야당의 동의 따위는 싹 무시하는 문재인 인사(人事)가 아니라면 대법원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사람이다. 신현수의 검사와 변호사 시절 실력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인정한다.
문 정권은 능력에 부치는 자리에 앉은, ‘길 가다 지갑을 주운 듯’ 횡재한 또 다른 김명수들의 천국이다. 검찰 내에서 ‘검사장 되기도 어렵다’던 이성윤을 요직에 발탁한 뒤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시켜주니 물불 안 가리고 ‘방탄정권단’ 노릇을 하다 이제는 가장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가 됐다. 북한 핵문제와 4강 외교를 잘 모르는 분도 청와대 말만 잘 들으니 ‘일국의 외교장관’으로 3년 반 넘게 장수하는 기록을 세웠다.
현 정권의 실력자나 고위 공직자 가운데 유난히 역대 정권에 비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자리에 탐닉하고 연연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자명하다. 이 정권이 아니라면 중용되지 못했을 3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1류일 필요는 없으나 국정 담당자들이 3류면 국민이 피곤하고 민생이 고단해진다. 그 낯 두꺼움을 봐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보너스’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