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 경북 안동, 예천. 모두 이번 주말(2021년 2월 20~21일)을 즈음해 산불이 발생한 지역입니다. 산림청과 소방당국은 이번 산불로 최소 축구장 수백여 개 면적의 산림이 잿더미가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1년 2월 21일 오후 4시 경 경북 안동시 임동면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 사람과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불길이 번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자 김영한 씨 제공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타오르는 산불은 더 거세지고, 진화도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지구가 계속해서 말라붙어가고 있는 데서 찾습니다. 지구의 건조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 부작용으로 산불이 증가하고 거세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날飛’에서는 이 같은 지구 건조화에 대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올겨울 눈이 그렇게 많이 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선 서울의 연평균 습도(상대습도)값 추이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는 ‘서울지방 기후 특성’으로 연평균 습도가 64%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020년 서울의 평균 습도도 62.8%였습니다.
1981~2010년 서울의 평균습도. 현재는 약 64%이지만 기상청이 조만간 발표할 1991~2020년 평년값은 61~6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료: 기상청.
하지만 예전에는 평균 습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서울의 습도 자료는 6·25 전쟁 기간인 1950~1953년을 제외하고는 1920년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매일 기록돼 있습니다. 이 자료를 보면 과거에는 습도가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20년의 평균 습도는 72.3%였고 1970년대 중반 정도까지도 70%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가파르게 연평균 습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현재 수준이 되었습니다.
서울의 연 평균 습도를 한 화면에 그린 그래프. 1970년대 이전과 이후의 습도값이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료: 기상청
습도가 낮아지는 추세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중에서도 건조한 계절의 추세가 뚜렷합니다. 1년 열두 달 중 4월이 가장 심한데, 10년마다 1.37%씩 습도가 감소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1970년대쯤까지 4월 평균 습도는 60%~70%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2003년과 2014년(각 60%)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60%대로 수치가 올라간 적이 없습니다.
봄철의 습도 감소는 특히 심각합니다. 4월의 상대습도는 연평균보다 약 30%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자료: 기상청
서울이나 한반도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우주·대기물리학연구소와 미국 MIT 지구·대기·행성과학부가 공동 연구해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게재한 2018년 논문을 보면 북위 40도~남위 40도 사이의 육지 상대습도는 10년에 0.2도씩 낮아지는 추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습도가 감소하는 추세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료: Trends in continental temperature and humidity directly linked to ocean warming, 미국국립과학원보 게재, 2018.
지구가 건조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뻔하게도) 지구온난화 때문입니다. 우리가 통상 말하는 ‘습도’는 위에서 다루었듯 일반적으로 ‘상대습도’를 의미합니다. 상대습도는 현재 공기가 머금고 있는 수증기의 양이 그 온도에서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최대 수증기량(포화수증기량) 대비 얼마나 많은지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환경에서 포화수증기량을 결정하는 변수는 바로 온도입니다.
상대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려면 기온이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수증기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지구는 지속적으로 덥혀져 왔습니다. 2020년 1월 미우주항공국(NASA)와 미해양대기청(NOAA)은 “1880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근 5년은 140년 사이 가장 뜨거운 해였다”고 밝히며 아래 그래프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1880년 이후 매년 지구의 월별 온도를 한 화면에 그린 그래프. 맨 위쪽 까만 점으로 연결된 선이 2019년의 기온입니다. 자료: 미우주항공국, 미해양대기청
“기온이 높아지면 그만큼 수증기가 많아질 수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연구 논문을 보면 기온이 올라가면 수증기량 자체는 증가하는데도 상대습도는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수증기량도 함께 증가하지만 상대습도를 유지하기에는 모자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그래프. 자료: Trends in continental temperature and humidity directly linked to ocean warming, 미국국립과학원보 게재, 2018.
위 그래프 중 가운데 그래프는 ‘비습(Absolute Humidity)’을 의미합니다. 공기 중 수증기의 양을 질량으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공기가 머금은 수증기의 총량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 지구에는 전체 수증기량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대기는 건조해져 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들이 지구온난화를 더욱 가속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총 수증기량은 많아지는데 (상대)습도는 낮아진다면 양쪽 모두의 악영향만 발생하는 나쁜 결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상대습도가 낮아지면 가장 먼저 식물이 말라죽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라산 정상 인근의 구상나무가 말라죽어있는 모습(2015년). 동아일보DB
흔히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을 이산화탄소라고 생각하지만, 수증기 자체도 강력한 온실효과의 원인입니다. 한여름 찜통더위 때 한밤중에도 기온이 잘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편하실 듯합니다. 즉 공기 중에 수증기량이 많아질수록 지구온난화도 더 가속화될 수 있는 겁니다.
수증기가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주범 중 하나임을 지적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
그런데 습도 자체는 낮습니다. 그러니까 수증기는 더 많아졌지만 느껴지기에는 ‘건조하다’고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습도에 반응합니다. 실제 포화수증기압과 실제 수증기압의 차이값을 의미하는 ‘수증기압차(VPD, Vapour Pressure Deficit)’가 계속해서 커지면서 전지구적 식물의 생장 면적이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식물의 생장이 감소 또는 증가하는 영역을 표시한 지도. 붉은 색 부분이 식물 생장이 저하되고있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자료: Increased Atmospheric vapor pressure dificit reduces global vegitation growth, 미국과학진흥회 Science Advances 게재, 2019
○VPD란?!특정 온도의 포화수증기압에서 실제 수증기압을 뺀 값입니다. 이 값이 클수록 공기가 건조하다는 뜻입니다. 두 값을 나눈 상대습도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이해하셔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VPD가 클수록 건조하고, 상대습도는 낮아집니다.
생장 면적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살아있는 식물도 문제입니다. VPD가 낮을 경우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내뿜는 식물의 광합성 활동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광합성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식물은 잎에 있는 기공을 열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그런데 이 기공은 식물이 머금은 수분이 증발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식물은 건조함을 느끼면(VPD가 높아지면) 말라죽지 않기 위해 기공을 닫아버립니다. 광합성이 일어나지 않고,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량은 증가, 산소량은 감소합니다.
광합성 과정 모식도. 빛과 물(습도), 이산화탄소 중 하나만 없어도 광합성은 일어나지 않고, 산소가 만들어질 수도 없습니다.
땅에서도 물을 빨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 맞습니다. 그런데 대기가 건조해지면 땅에 있는 수분도 줄어든다는 게 문제입니다. 서울대 정수종 교수·주재원 연구원 연구진은 2020년 발표한 논문에서 현재와 같은 지구온난화 추세가 계속될 경우 2100년이 되기 전에 전 세계의 절반 정도의 땅이 수분 부족 상황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현재 수준으로 계속 심각해질 경우를 가정해 전 세계 토양의 수분 변화를 조사한 서울대 정수종 교수·주재원 연구원의 연구 결과. 붉은 색이 강할수록 수분 부족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자료: Emergence of significant soil moisture depletion in the near future, 영국물리학회 IOP publishing 게재, 2020
식물의 광합성이 줄어들면 공기 중 산소 농도는 줄어들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더 증가하게 됩니다. 온실효과가 더 가속화됩니다. 포항공대 국종성 교수·박소원 연구원 연구진은 지난해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하면 북극의 기온이 더 빨리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북극 온난화 가속화는 지금까지 지역적 특성만 큰 영향을 미치고 거리가 먼 저위도에서는 따뜻한 해류 정도만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위도 지방의 이산화탄소량 증가 역시 북극 온난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로 나타난 겁니다.
전지구적 이산화탄소량 증가가 북극의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포항공대 국종성 교수·박소원 연구원의 논문. 극지방(지도 맨 위쪽)의 붉은 색이 강할수록 온난화가 심각하다는 의미입니다. 자료: The intensification of Arctic warming as a result of CO2 physiological forcing, 네이처커뮤니케이션즈 게재, 2020
땅에서 수분이 줄어들고, 식물이 광합성, 즉 생장을 멈추고 습도는 낮아지고. 뒤따라오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사막화’일 겁니다. 실제 미국 캘리포니아대 기후해양과학부 공동 연구진은 남미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의 기후 변화를 관찰한 결과 강수량이 꾸준히 줄어왔다는 사실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연구진은 아마존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의 태양에너지는 계속 증가하고 강수량은 감소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 자료: A recent Systematic increase in Vapor Pressure Dificit over Tropical South America, 네이처 Scientific reports 게재, 2019
말라붙은 숲에는 필연적으로 산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한 번 산불이 나면 진화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실제 아마존에서는 남미 대륙이 건기에 해당하는 7, 8월에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1985년 대비 2017년에 아마존 열대우림 면적의 11%가 사라졌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아마존에 대형 산불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을 다룬 동아일보 2019년 기사.
지구 반대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시 건기인 봄철 산불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산림청이 발표한 2019년 산불통계 연보를 보면 최근 2010년대 초반 감소세를 보였던 산불 건수가 2014년부터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건조화는 야산의 나무나 식물뿐만 아니라 농작물 작황에도 영향을 줍니다. 현재와 같은 상태로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인류는 극심한 기근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2010년대 산불 발생 건수 통계. 2014년 이후 급격하게 산불 건수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료: 산림청 산불통계연보
지구온난화가 환경 분야의 화두다보니 너무 자주 언급되고, 그래서 이제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이제 그 부작용들이 너무나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영문법 책에서 수없이 접했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라는 말을 바로 이 지구온난화 이슈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지구도 건강하고 촉촉한 날들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