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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주하는 민주당, 뒷수습 바쁜 청와대[청와대 풍향계/황형준]

입력 | 2021-02-23 03:00:0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확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와 함께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황형준 정치부 기자

“청와대의 말발이 예전처럼 먹히지 않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근무해온 한 청와대 관계자는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당청 관계에서 무게중심이 청와대에서 당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임기 초반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참모진의 언행을 여당은 쉽게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1년 3개월 남짓 앞둔 임기 말 민주당이 청와대와의 조율 없이 ‘단독 드리블’을 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늘면서 이 같은 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적용 대상에 언론과 포털을 포함한 것이 단적인 예다. 당초 청와대는 민주당 윤영찬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내용대로 언론이 아닌 누리꾼들이나 유튜브 방송,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게시글과 댓글 이용자들에게만 배상 책임을 묻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 미디어·언론상생특별위원회(TF)가 9일 기존 언론도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청와대는 당황했다. 국회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들조차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열성 지지층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이해하지만 청와대와도 조율 없이 법안을 추진하면서 결국 될 일도 안 되게 생겼다”며 혀를 찼다. ‘언론재갈법’이라는 야당과 언론계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데다 법체계에 대한 꼼꼼한 검토 없이 추진 계획이 발표되면서 유튜버 등을 규제하려던 원안조차 추진 동력이 떨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을 담당할 중대범죄수사청(가칭)과 공소청 설립 등 이른바 ‘검찰 개혁 시즌2’ 법안들도 마찬가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공약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인데 여당은 한발 더 나아가 검찰이 아예 수사를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공약에도 없던 내용을 민주당이 추진하는데도 청와대는 “입법 사항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검찰개혁의 밑그림을 그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검찰개혁의 마지막 단추가 채워지게 된다”고 적극 옹호한 것을 보면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이면서도 겉으로는 이 사안에 거리를 두기로 당청이 내부적으로 역할 분담을 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선 민주당이 더 급진적 검찰개혁 방안을 추진하는 데 대한 역풍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계층 지원 방안을 놓고는 청와대 내부에서 “청와대가 대선 주자 뒤치다꺼리하기에 바쁘다”는 자조(自嘲)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익공유제를, 정세균 국무총리는 손실보상제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을 우려하는 기획재정부와 유력 주자들 가운데 어느 한쪽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 없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 입장에선 중재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문 대통령이 19일 여당 지도부 간담회에서 코로나19 진정 이후를 전제로 전 국민 위로지원금 지급을 공식화한 것도 이를 강하게 주장해온 이 대표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4·7 보궐선거와 내년 3·9 대선 등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청와대의 힘은 더욱 빠질 수밖에 없다. 여당은 정권 연장이라는 목표하에 차기 권력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선거를 의식한 법안과 포퓰리즘적 정책들을 부지기수로 내놓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정운영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는 국가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정책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임기 초반 입법과제 달성을 위해 여당을 채찍질하던 청와대가 임기 후반에 들어 지금처럼 “입법부 일에 관여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건 무책임하다. 임기 중의 입법과 정책 등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공과로 돌아온다. 여당이 ‘청와대 출장소’여서도 안 되지만 청와대가 ‘미래 권력의 들러리’를 서는 것도 국민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