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날씨와 메마른 산림에 강풍까지 겹쳐 피해 커졌다” 최근 10년 산불 66% 3~5월 발생 2월에 하루 9건 발생은 이례적 산불주의보… “각별한 주의 필요”
22일 오전 경북 안동시 임동면 산불 현장에서 산림청 소속 헬기가 물을 뿌리며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눈앞에서 큰 불길과 맞닥뜨린 강성용 씨(53·경북 안동시)는 그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 씨는 불이 난 후 이틀을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다. 그는 “집만 빼고 뒤쪽 야산이 싹 다 타버렸다. 이웃 중에는 남편이 다리를 다쳐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탈출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 전국 300ha 산림 소실
21일 오후 3시 20분경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야산에서 시작된 불은 21시간 만인 다음 날 낮 12시경에야 겨우 큰 불길을 잡았다. 불은 5km 떨어진 중평리까지 초속 11∼13m의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불이 난 야산 일대는 검게 탄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소방당국은 잔불 정리 상황에서 불씨가 되살아날 것에 대비하고 있다.
예천군 감천면 증거리 야산에서 난 불도 18시간 만인 22일 오전 10시 25분경 잡혔다. 불은 바람을 타고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 일대까지 번졌다.
전문가들은 피해가 컸던 이유를 무덥고 건조했던 날씨와 메마른 산림 때문으로 보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올해 강수량이나 적설량이 적어 전반적으로 건조한 상태”라며 “산불이 멀리까지 번진 건 이런 환경적 요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안동에는 이달 1일 10.5mm의 비가 내렸지만 이후 20여 일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전날 오후 충북 영동군 매곡면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임야 20ha를 태우고 22일 오전 9시 반경 진화됐다. 불이 난 지 17시간 만이다. 한때 야산 인근 마을주민 39명이 마을회관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같은 날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하동에서 발생한 산불도 아름드리 소나무 등이 울창한 20ha의 삼림을 태우고 23시간 만에 꺼졌다.
이번 불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안동 예천 영주 일대 255ha를 포함해 전국 산림 300ha 정도가 잿더미가 됐다. 축구장 420개와 맞먹는 넓이다.
○ 3∼5월 집중 ‘각별한 주의 필요’
원인도 △입산자 실화(1594건)가 가장 많았고 △논밭 소각(717건) △쓰레기 소각(649건) 등의 순이었다.
이번 산불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소각 과정에서 옮겨 붙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농민이 논을 태웠거나 성묘객이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다가 불이 났다는 얘기가 있어 현재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소방청도 산불주의보를 내렸다. 소방청 관계자는 “동해안 지역에 건조·강풍특보가 계속되고 있어 화재 대비와 대응 태세 강화를 지시했다”며 “작은 불씨도 크게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 / 안동=명민준 / 영동=장기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