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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근무·초동조치·시설물관리 ‘총체적 부실’…‘오리발 귀순’의 전말

입력 | 2021-02-23 18:21:00


16일 동해를 헤엄쳐 귀순한 북한 남성 A 씨가 남하하는 과정에서 폐쇄회로(CC)TV에 10차례나 포착됐지만 관할 부대인 22사단은 이를 8번이나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초동 조치와 보고가 지연되면서 군은 A 씨가 해안에 도착한 뒤로도 6시간 이상 강원 고성군의 동부전선 일대를 활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경계근무와 초동조치, 시설물 관리 등 대북 경계의 핵심 요소들이 이번 ‘오리발 귀순’ 사건에서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합동참모본부는 23일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환골탈태의 각오로 보완 대책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 내부에서는 과거에도 공언했던 대책을 ‘재탕’하는 것만으론 경계실패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경계근무·초동조치·시설물관리 ‘총체적 부실’

16일 오전 1시 5분경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에 도착한 A 씨는 오전 1시 40분경 해안철책 아래의 배수로를 통과하기 전까지 해안 CCTV 4대에 5번 포착됐다. 상황실에 경보가 2차례 울렸지만 당시 CCTV 여러 대를 보고 있던 감시병은 바람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판단해 이를 추적 감시하지 않았다고 합참은 밝혔다. A 씨는 각 CCTV에 10초 이내로 포착됐는데 감시병이 이 모습을 확인했거나 CCTV를 다시 돌려봤다면 A 씨가 군사분계선(MDL)에서 약 8km 떨어진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인근까지 내려오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6일 오전 4시 12분경 민통선 내 해군부대인 합동작전지원소 경계용 CCTV에 3차례 찍힌 A 씨는 오전 4시 16분경 민통선 초소 CCTV에 또 다시 2차례 포착됐다. 군은 그제서야 A 씨를 처음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 해당부대는 A 씨를 출퇴근하는 군 간부로 판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초기 판단에 문제가 생기면서 A 시를 처음 발견한 지 31분이 지나서야 최초 상황보고가 이뤄졌다. 사단장과 합참은 그보다 뒤인 오전 4시 50분 이후 이런 사실을 보고받았다. 이 때문에 이날 오전 7시 27분경 A 씨 신병을 확보하기 전까지 진돗개 ‘하나’ 발령(오전 6시 35분경) 등 군 검거작전에도 차질이 빚어졌던 것.

또 A 씨가 통과한 직경 90cm 길이 26m의 배수로는 동해선 철로공사 때 설치됐으나 22사단은 이 시설물의 존재 자체를 몰런 것으로 드러났다. 합참 관계자는 “(조사과정에서) 부대관리 목록에 없는 배수로 3개를 발견했다. 부식상태를 고려할 때 A 씨 통과 전부터 훼손됐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강화도 ‘탈북민 월북’ 사건 이후 일선 부대에 배수로 점검 지시가 내려졌지만 이 부대는 배수로 3개를 누락한 채 “점검을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 “후속대책은 재탕”

합참은 후속대책으로 향후 “합참의장 주관 작전지휘관 회의를 개최해 전 부대 지휘관과 경계작전 요원의 기강을 확립하고 국방부-합참-육군본부가 통합으로 22사단 임무수행 실태를 진단하겠다”고 밝혔다. 배수로와 수문도 전수조사 하겠다고 했다. 국방부는 22사단장 등 지휘계통 관계자 문책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11월 같은 부대인 22사단에서 ‘월책 귀순’이 발생한 뒤 대책과 거의 흡사하다. 이에 따라 군 내부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경계 실패 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 씨는 군과 정보당국 합동조사과정에서 “해금강으로부터 헤엄쳐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합참은 A 씨가 6시간 동안 동해를 헤엄쳐 온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잠수복 안에 두꺼운 옷을 입어 부력이 생성됐을 가능성이 있고 연안 해류가 당시 북에서 남으로 흘렀다는 것. 또 A 씨가 어업과 관련한 부업에 종사했다며 “물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