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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걱정에 외출 안한다면… ‘코로나 우울’ 고위험군

입력 | 2021-02-24 03:00:00

[코로나 우울, 나도 혹시…]<下>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40대 주부 이정민(가명) 씨는 가끔 나서는 거리에서 낯선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혹시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릴까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이 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주말에 지인과 골프를 치고, 사람들을 만나 삶의 활력을 찾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집에서 잘 나오지 않고 있다. 군인 아들에게도 “휴가 나오지 말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가족과의 접촉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지난해 11월 이 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 꼭 필요한 외출도 못 하면 ‘코로나 우울’ 의심

이 씨는 ‘코로나 우울(코로나 블루)’을 겪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기존 병명으로는 건강염려증에 해당된다. 이 씨의 주치의는 “이 씨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건강을 우려하는 것은 질병”이라며 “건강염려증이 악화돼 증상이 없고 밀접접촉자가 아닌데도 매주 한 차례 이상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해 최근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등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코로나 우울은 학술적으로 정해진 병이 아니다. 다만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우울증, 무기력증, 통제 불능의 분노 등이 생기는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되며 누구나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1년 넘게 계속되면서 이런 감정이 오랜 기간 이어지는 것이다. 자칫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코로나 우울의 대표적인 증상은 외출 안 하기와 강박관념이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최소한의 외출도 하지 않고, 주변인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는 의심을 떨쳐내기 어렵다면 코로나 우울을 의심해볼 수 있다. 하루에 1시간 이상 코로나19 관련 기사를 검색하거나 확진자 동선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 건강’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코로나 우울이 심해지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30대 직장인 김혜정(가명) 씨는 재택근무를 하며 올 1월 한 달 동안 외출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약속은 모두 취소하고 끼니는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코로나19 불안과 길어지는 ‘집콕’ 생활이 겹치면서 그는 우울증을 앓게 됐다. 요즘은 TV를 보는 것도 어렵다. 김 씨는 결국 휴직하고 심리상담을 받는 중이다.

김 씨가 일상적인 일도 할 수 없게 된 건 우울증이 뇌 신경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기억력, 집중력, 사고력이 크게 떨어졌다. 불안장애를 겪는 경우에도 매사 집중을 못 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김 씨처럼 코로나19 확산 이후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거나,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챌 정도로 말수가 줄고 행동이 느려졌다면 코로나 우울을 의심해봐야 한다.

○ 취약계층에 더 혹독한 코로나 우울

마음의 병을 방치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박창훈(가명·60) 씨는 지난해 명예퇴직 직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외부 활동을 할 기회를 잃었다. 혼자 사는 박 씨는 형에게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등 우울증 증세를 보여왔다. 가족의 치료 권유도 거부했다. 박 씨는 이달 극단적인 선택을 해 응급실에 실려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비대면 사회에서 더 고립되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은 코로나 우울에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우울에 취약한 사람들은 코로나 정보에 노출되는 시간을 하루 30분 이하로 정하고, 매일 산책을 하는 게 좋다”며 “주변인도 이런 분들과 꾸준히 연락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찬승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은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심리적인 부작용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며 “큰 감염병 확산 이후에도 정신적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국민들의 ‘심리방역’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신건강 치료 금기시 사회 분위기 먼저 바뀌어야”





정신문제 유경험자 22%만 상담
전문가 “초기에 치료해야 조기완치”


자영업을 하는 40대 남성 최승훈(가명)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건망증이 심해졌다. 평소와 다르게 식욕이 없고 피로감도 자주 느꼈다. 6개월간 이런 증상이 계속됐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렇겠거니’ 했다. 딸의 거듭된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나서야 최 씨는 본인이 우울증에 걸린 걸 알았다. 스스로의 감정에 무감각한 사이 매출 하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마음의 병으로 커진 것이었다.

우울증은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2개월 내에 완치된다. 불안장애(공황장애 등), 분노장애(간헐적 폭발성 장애)를 가진 경우도 빨리 치료를 받는다면 주변인들과 관계가 나빠져 증상이 심해지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지 못해 증상을 방치하거나, 알더라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9년 국립정신건강센터 조사 결과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5명 중 1명(22.0%)만이 누군가와 상담하거나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본인의 정신건강 문제를 알고도 1년 넘게 치료를 받지 않은 비율도 30.9%에 달했다. 병원을 찾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두면 나아질 것 같아서”(39.3%), “스스로 극복해야 할 것 같아서”(20.3%) 등을 이유로 꼽았다.

백명재 경기도 선별진료소 전문의(정신건강의학과)는 “최근 20, 30대는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중장년 남성은 진료받는 비율이 여전히 낮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일상적인 감정이 된 불안과 우울,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이런 감정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낀다면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고령층, 소외계층,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친 실직자 등은 코로나 우울의 타격이 더 큰 만큼 주의해야 한다. 실직자의 경우 각 지역 고용노동센터에서 무료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도 무료 상담이 가능하다.

정신건강 치료를 꺼리는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전히 병원 진료 문턱이 높다”며 “본인 증상이 코로나 우울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면 초기에 치료를 받아야 빨리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분들 가나다순.
△김현수 명지병원 교수 △백명재 경기도 선별진료소 전문의 △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 △ 정찬승 전문의 △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교수 △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교수


김소영 ksy@donga.com·송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