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이전 가입자 10~19% 올라 3~5년 주기 갱신땐 누적돼 부담
881만 명이 가입한 구(舊)실손의료보험(1세대 실손보험)의 보험료가 4월부터 최고 19% 오른다. 갱신 주기에 따라 인상률이 누적돼 보험료를 50% 넘게 더 내야 할 수도 있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4월부터 구실손보험의 보험료를 15∼19% 인상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달 2세대인 ‘표준화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평균 10∼12% 인상됐다.
구실손보험은 2009년 9월까지 팔리고 단종됐으며, 표준화 실손보험은 2009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판매돼 1925만 명이 가입했다.
3400만 명 이상이 가입한 실손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지만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여서 보험사 실적 악화의 주요인으로 꼽혔다. 이에 따라 7월부터 보험금을 많이 탈수록 보험료를 더 내는 4세대 실손보험이 나온다.
“일부 고령자 실손보험료 100% 넘게 올라” 가입자들 분통
실손보험 손해율 132% 달하자 4세대 판매 앞두고 당국도 허용
3, 4세대 실손으로 갈아타기 고민 “비급여 치료 많으면 기존이 유리”
“어떻게 보험료가 한 번에 45%나 오를 수 있죠?”
9년 전 ‘표준화 실손보험’에 가입한 40대 이모 씨는 최근 보험 통지서를 받고 놀랐다. 3년 주기로 보험을 갱신해 왔는데 매달 2만4000원 내던 보험료가 다음 달부터 3만5000원으로 인상된다는 것이다. 이 씨는 “보험금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데 왜 이렇게 보험료가 오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1, 2세대 실손의료보험을 갖고 있는 가입자들은 올해 보험료가 크게 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갱신 기간에 따라 평균 50% 이상 보험료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보험금을 많이 탄 일부 고령자는 100% 넘게 뛸 수도 있다”고 했다.
○ ‘보험 갱신 폭탄’ 예고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2세대인 표준화 실손의 보험료가 평균 10∼12% 오른 데 이어 4월부터 1세대인 구(舊)실손 보험료가 평균 15∼19% 인상될 것으로 예고됐다.
구실손은 2009년 9월까지 팔린 상품으로, 보험사가 통상 치료비의 100%를 보장해준다. 판매가 중단된 지 11년이 넘었지만 881만 명이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표준화 실손은 가입자가 치료비의 10∼20%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보험사가 내주는 구조다. 2017년 3월까지 판매돼 1925만 명이 가입해 있다. 이후 등장해 ‘착한실손’, ‘신(新)실손’으로 불리는 3세대 실손보험은 올해 보험료가 오르지 않았다.
보험사들이 1, 2세대 실손보험료를 대폭 올리는 것은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전체 실손보험의 손해율(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급 비율)은 평균 131.7%다. 보험료로 100만 원을 받으면 보험금으로 131만7000원이 나갔다는 뜻이다. 특히 1세대(142.9%), 2세대(132.2%) 손해율이 더 높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치료비가 비싼 비급여 항목의 보험금 청구가 갈수록 늘어난 데다 일부 가입자가 보험금을 과다하게 받아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험료 인상은 업계 자율이긴 하지만 실손보험은 국민 5명 중 3명이 가입한 만큼 금융당국이 사실상 지침을 준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보험료 인상에 제동을 걸었지만 누적되는 적자를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두 자릿수 인상을 허용했다. 금융당국 주도로 7월 선보이는 4세대 실손보험 판매를 앞두고 과거 상품의 보험료 인상을 허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신상’ 갈아타야 하나 고민
실손보험 가입자의 95%(입원 치료 기준)는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거나 연평균 50만 원 이하를 받아갔다. 이 씨는 “‘의료쇼핑’을 하며 보험금을 과다하게 챙겨간 일부 때문에 대다수의 보험료가 오른다니 화가 난다”고 했다. 특히 1, 2세대 실손은 보험 갱신 주기가 3, 5년으로 설계돼 인상률이 한꺼번에 누적되면서 가입자 부담을 더 키운다는 지적이 많다.
보험료 인상이 부담스러운 가입자들은 3세대 실손이나 7월 나올 4세대 실손으로 갈아타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4세대 실손은 보험료가 과거 상품보다 10∼70%가량 저렴하다. 5년 갱신형 실손보험에 가입한 40대 B 씨는 “최근 보험사가 2년 후 갱신 때 보험료가 1만8000원에서 6만 원으로 약 230% 오른다는 안내문을 보냈다”며 “4세대로 갈아타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료가 싼 만큼 자기 부담률이 더 높고 비급여 진료를 많이 받을수록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급여 치료를 많이 받거나 받을 예정인 가입자는 기존 상품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고 했다.
신지환 jhshin93@donga.com·김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