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스스로 문제점 못 느낀 ‘살려주세요 해보라’는 발언과 검찰 인사안의 민정수석 패싱, 일반적인 무례함을 뛰어넘어 양아치 같은 이질감 안겨 줘
송평인 논설위원
고교 1학년 때 반에 밴드부원이 있었다. 어느 날 자율학습 시간에 하도 떠들어서 내가 조용히 좀 하라고 제지하다가 다툼이 벌어졌다. 그가 교실 거울을 깨 조각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이 나서 말리는 바람에 싸움은 일단 중단됐다.
휴식 시간에 3학년 밴드부 주장이 밴드부실로 날 불렀다. 학생들은 음악 시간에 음악실에 가다가 음악실 옆 밴드부실로 끌려가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곳에서 혼자 밴드부 주장과 마주했다. 그가 겁을 주다가 “혹시 서클에 가입돼 있느냐”고 물었다. YMCA에 있다고 하자 그냥 가라고 했다.
나랑 시비가 붙었던 밴드부 녀석은 3학년 때 반 친구를 칼로 찔러 퇴학을 당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듯 1980년을 전후한 당시는 서울 변두리 지역 학교에 폭력이 만연했다. 그래도 웬만해서는 학생을 퇴학까지 시키지는 않았다. 서클 친구가 다른 서클 친구에게 맞고 와 패싸움을 벌였다가 학교에서 나오게 됐다는 박 장관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최근 거론되는 연예인 체육인 학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심각한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의원님 살려주십쇼’ 한 번만 해보세요.” 박 장관이 국회의원 때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삭감된 대법원 예산을 복원시켜 주겠다며 한 말이다. 일반인은 호의를 베풀 때도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학교 양아치가 친구를 잡아놓고 괴롭히다가 ‘보내줄 테니 살려주세요 한번 해봐’ 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그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이 얼마나 분노했던지 요구한 예산을 철회해버렸다. 가정이 불우해서 양아치가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개과천선했다는데도 양아치 근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종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아무리 터프해도 범생이들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수 끝에 사시에 합격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좌충우돌 끝에 정상에 올라 지금은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고 다니지만 기본적으로 범생이다. 신현수 민정수석 역시 검사 출신답지 않게 술 한잔 들어가면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로맨티시스트이지만 기본적으로 범생이다. 그 범생이들의 구역에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 들어와 발생한 것이 최근 검사 인사 사태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을 패싱해버렸다. 인사권자가 대통령인데 별거냐 할지 모르지만 청와대가 그 패싱을 해명할 논리를 찾지 못해 얼버무릴 정도로 이질적인 사건이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을 패싱하면서 그에게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범생이들은 억지 논지로라도 왜 옳은가를 먼저 내세운다. 그래서 범생이이고, 그래서 사회가 유지된다. 양아치들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만을 따지고 우리 편이 아닌 상대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패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는 푸틴을 연상시키는 러시아 대통령 페트로프가 등장한다. 만찬에서 페트로프의 불편한 행각을 함께 지켜본 뒤 미국 대통령에게 영부인이 이런 말을 한다. “페트로프는 똑똑해. 그러나 양아치(thug)야. 양아치 앞에선 움츠려선 안 돼(Don‘t cower to him).”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