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시민들이 방문해 추모글을 남겼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사건과 관련해 24일 국회에서 ‘정인이법’ 개정안에 대한 2차 심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학대 피해아동을 10년째 지원해온 변호사가 국회의 ‘졸속입법’ 발의안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23일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아동학대처벌법(정인이법) 법안에 관한 의견서’를 발송하며 37개의 발의안이 가진 문제점을 상세히 설명했다. 지난달 정인이법 개정안에 대한 1차 심사 당시 언론과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법사위는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통과시키지 않고 이달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24일 2차 심사에는 비판을 받았던 ‘졸속입법’ 발의안들이 또 다시 올라왔다.
●아동학대살해죄 신설 등은 바람직
이날 심사하는 37개 발의안 중 전문가들이 대체로 ‘찬성’ 의견을 밝힌 것은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낸 발의안 등 두 건이다. 전 의원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아동학대살해죄를 신설하고 학대피해아동 국선변호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발의안을 냈다. 아동학대살해죄를 신설할 경우 폭행, 감금, 상해 등 아동학대 범죄의 가해자가 고의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 가중처벌 할 수 있다. 현재 아동이 사망할 경우 살인죄나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되는데 살인죄는 고의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아동학대치사죄는 관대한 양형기준 탓에 처벌에 한계가 있어 아동학대살해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기계적 즉시분리, 법정형 강화는 부작용 우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등은 2회 이상 학대 신고가 접수된 아동을 부모와 즉시 분리하는 발의안을 내 ‘기계적·형식적 분리’가 우려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고 의원은 “현장출동, 학대현장 발견 등을 2회 이상 한 경우 반드시 피해 아동을 보호시설로 보내 분리한다”는 법안을 냈다. 지난달 1차 심사에서도 비슷한 발의안이 나와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국회에 제출된 의견서에는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분리할 때 형식적인 요건을 도입해 기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아동의 권리를 실현하기보다 행정편의적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변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행법으로도 경찰이 아동을 분리할 수 있는데 이를 ‘2회 발견 시 무조건 분리’하도록 변경하면 1회 발견 때 분리해야 할 아동을 분리하지 않거나 2회라는 횟수만 충족되면 별다른 고려 없이 분리하고 끝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의 경우 학대 피해를 신고하면 가정에서 분리돼 삶의 터전에서 떠나야한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신고를 꺼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무조건 아동을 보호시설로 보낼 경우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전국의 아동보호 쉼터가 이미 포화 상태여서 아동을 분리시키더라도 머물게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등이 아동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아동학대치사죄)의 법정형을 징역 10년 이하로 상향하는 법안을 낸 것에 대해서도 “불기소 처분을 늘리는 역효과가 나올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최저 형량을 높이면 법원의 범죄 입증 기준이 높아져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게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피해아동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동을 보호시설에 입소시키는 법안에 대해서도 “아동의 분리는 아동의 의사가 최우선”이라며 “아동의 의견을 배제하는 것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왔다. 1차 심사에 이어 또다시 나온 ‘아동을 즉시 분리하지 않은 경찰을 형사처벌한다’는 조항도 실무자의 판단과 재량권을 축소해 형식적인 분리를 남발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