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콘텐츠/증발]
이호재 문화부 기자
행안부가 사실조사에 나선 이유는 행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2009년부터 거주 불명자도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거주불명 등록제도’를 도입했으나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선거 공보물을 보내고 행정기구의 인력을 배분하는 등 행정 비용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거주 불명자의 생사를 확인한 뒤 주민등록을 말소시키겠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지난해 10월 보도한 ‘증발 사라진 사람들’을 통해 증발자들을 찾아다녔다. 실직, 파산, 사별, 이혼, 질병 등을 겪은 뒤 가족과 친구 곁에서 스스로 떠나버린 이들을 만난 것이다. 법원에서 실종 선고를 받은 뒤 주민등록이 말소된 이들도 있었고, 주민등록은 살아있지만 숨어 사는 이들도 있었다.
문 씨의 경우 다행히 지난해 4월 세상으로 돌아왔다. 검사가 직권으로 실종선고 취소 소송을 낸 덕에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았다.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공사장에서 다친 뒤 고치지 못한 오른손도 치료할 계획이다. 전세 대출을 받아 집을 구하려고 한다. 문 씨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올해 설은 누나 집에서 함께 지냈다”며 기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회가 우선해야 할 일은 지우는 것이 아니다. 찾아내는 일이다. 만약 이번 사실조사를 통해 주민등록이 말소가 되는 이들이 있다면 그 거주 불명자는 영영 사회에서 지워진다. 행정 비용을 줄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에서 증발한 이들을 마음을 다해 찾아내고, 그들이 있고자 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가족들이 거주 불명자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다면 행안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 건강보험 진료 등의 기록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기 쉽지 않다.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금이라도 알기 바라는 것이 남은 이들의 마음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마음이 아닐까.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