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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위한 희생[이은화의 미술시간]〈151〉

입력 | 2021-02-25 03:00:00

자크루이 다비드 ‘브루투스에게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바치는 호위병들’. 1789년.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예술작품에는 창작자가 살던 시대적 상황과 고뇌가 어떤 식으로든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 자크루이 다비드만큼 정치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또 있을까. 그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던 1789년 정치적 대의를 위해 자식을 희생시킨 브루투스 이야기를 그려 살롱에 전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브루투스는 기원전 509년 무장봉기를 일으켜 독재자를 몰아내고, 로마 공화국을 창시한 인물이다. 왕위를 빼앗긴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왕정복고를 위해 귀족 자제들과 손잡고 반란을 모의했는데, 하필 브루투스의 두 아들도 이에 가담했다. 반란 음모가 발각되자 브루투스는 즉각 두 아들의 처형을 명했다. 다비드는 두 아들의 시신이 브루투스의 집으로 이송돼 오는 장면을 상상해 커다란 화폭에 담았다. 공화국의 영웅 브루투스는 왼쪽 어두운 곳에 홀로 앉아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아들들의 시신이 들어오고 있지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반면, 오른쪽에 있는 아내는 주검 쪽으로 손을 뻗어 울부짖으면서 공포에 질린 두 딸을 안고 있다. 딸 중 한 명은 이미 실신했다. 푸른 천으로 얼굴 전체를 가린 여자는 하녀다. 궁정화가로서 평생 권력자의 표정과 마음만 헤아려왔던 그에게 하녀의 슬픈 감정 표현은 너무 어려웠던 걸까. 화가는 그녀의 표정을 생략해버렸다.

사실 다비드는 실제로도 상당히 정치적인 화가였다. 루이 16세의 궁정화가로 명성을 누렸지만, 혁명이 일어나자 주군을 단두대로 보낸 혁명정부의 공식 화가가 되었다. 이 그림을 포함해 혁명정신을 담은 그림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혁명시대 예술의 최선봉에 섰다.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집권하자 다시 황제의 선전화가로 활약했다.

정치적 격동기에 철새 행보를 보였음에도 다비드는 혁명, 반혁명 세력 모두가 원하는 그림을 그린 덕에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미덕을 그보다 잘 선전하는 화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