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고용침체 장기화의 그늘
이모 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화면. 조직원은 소셜미디어로 이 씨에게 접근해 호감을 산 뒤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일손이 부족하다” “너를 위해 소개해주는 것”이라며 보이스피싱이란 걸 감췄다고 한다. 독자 제공
길고 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쪼들리는 주머니 사정에 마음이 급해진 A 씨(24·여)는 1월 초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눈이 번뜩 뜨였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급료가 센 알바 자리가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곧장 전화를 걸었더니 일도 간단했다. 정해진 장소에서 누군가에게 현금을 넘겨받아 알려준 계좌로 입금만 하면 된다고 했다. 수당도 건당 10만 원이나 준다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상사와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나누며 지시를 받았다. 적게는 700만 원에서 많게는 3500만 원까지 10여 차례 시키는 대로 전달했다.
최근 코로나19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젊은이들이 ‘고수익 보장’ ‘단순 업무’라는 유혹의 덫에 걸려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들은 “범죄인지 몰랐다”며 하소연하고 있으나,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던 박모 씨(25)도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망쳐 버렸다. 영상 편집자를 꿈꾸던 그 역시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진 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런데 구직사이트에 올린 자신의 이력서를 보고 한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필리핀에 본사를 둔 카지노 에이전시”라고 소개한 업체는 국내에서 일손을 도와줄 직원을 뽑는다고 했다. 그들은 박 씨에게 해외여행을 가려는 고객들에게서 경비를 받아 회사로 이체하는 일을 맡겼다. 박 씨는 “번듯한 카지노 홈페이지와 사업자등록증 등을 보여줘 불법이라 의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업체 측과 얼굴 한번 마주한 적이 없었다.
결국 박 씨는 지난해 4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3000만 원을 받아 전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가 받은 수당은 10만 원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박 씨는 무죄를 호소했지만 1심 재판부는 “성인이라면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박 씨는 피해자들에게 1400만 원도 변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핑크빛 만남을 기대했던 그 역시 지난해 12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투자금 회수”라 했지만, 마찬가지로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돈을 받아 전달한 것이었다. 이 씨는 “이 일로 범죄 연루 기록이 남아 항공사 취직은 물거품이 됐다”며 한숨지었다.
보이스피싱 사건을 자주 맡아온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는 “청년들의 알바와 고수익이란 있을 수 없는 조합이다. 달콤한 제안은 범죄와 얽힐 수 있으니 너무 쉬운 돈벌이는 주변과 상의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종민 blick@donga.com·김수현·이상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