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휘청이는 대학들
“어디 못 간 학생 있으면 좀 보내주세요.”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려니 말문을 열 때마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럴 때는 재빨리 들고 온 물건을 교사 책상 위에 올린다. 체중계 또는 1인용 라면 쿠커다. 대학 마크가 박힌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는 교사들 책상마다 쌓여 있는 걸 감안해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27일까지 진행되는 추가모집 때문이다. A대는 2021학년도 정시모집 경쟁률이 1.6 대 1로 전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추가모집으로 정시 선발 인원(680명)의 반인 328명을 채워야 한다. 단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A대 입학처장은 “올해 대학 입학정원이 학생 수보다 8만 명 가까이 많다 보니 애들이 전부 상향 지원을 했다”며 “‘고교 뺑뺑이’를 돌아보지만 100명 정도는 못 채울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 대학 입학 대상은 2002년생이다. 2002년은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이 시작된 해다. 그해 출생아 수는 49만 명이었다. 그런데 3년 후 입학할 2005년생은 43만 명에 불과하다. 상황은 갈수록 절망적이다.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출생아 수는 27만2400명이다. 사상 최초로 20만 명대로 떨어졌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대학들의 도미노 붕괴가 3년 뒤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이소정 / 세종=송충현 기자
“신입생이 없다”… 비용 줄이려 미화원 내보내고 총장-교수가 청소
[저출산 쇼크]저출산에 휘청이는 대학들〈上〉비수도권大 들이닥친 ‘인구절벽’
“10년 넘게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밥그릇을 빼앗나!”
“파렴치한 집단 해고 철회하라!”
23일 부산 사상구 신라대 앞에서 할머니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신라대에서 일해 온 청소용역 노동자들. 학교 측은 이들 50여 명에게 2월을 끝으로 계약 종료를 선언했다. 신라대 관계자는 어쩔 도리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10년 동안 교직원 임금도 동결하고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이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됩니다. 인구가 줄어드니 신입생 모집은 안 되지, 재학생은 ‘인 서울’ 한다고 빠져나가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터지고 1000명 정도 되는 중국인 유학생 비었지…. 총장, 교수, 직원 전부 다 같이 청소해서 그 비용이라도 줄여보려는 겁니다.”
꽃피는 3월 개강을 앞두고 활기차야 할 대학 캠퍼스지만 요즘 지방대는 초상집 분위기다. 캠퍼스에 학생이 없어서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학생은 온라인에도 없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암울한 미래는 올해 지방대부터 덮쳤다. 동아일보가 취재한 지방대와 전문대 19곳 모두 “올해도 걱정이지만 앞으로가 더 두렵다”고 말했다.
○ 아이들이 없다―텅 빈 지방대의 전쟁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없어도 (일부 경쟁률이 높은) 간호학과나 유아교육과 빼고는 다 합격한다고 보면 됩니다.” 광주 A대 입학팀장은 요즘 지방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는 “지난해엔 일부 미인기 학과만 미달됐는데 올해는 정말 암울하다”며 “1년 전 2.5 대 1이었던 정시 경쟁률이 올해는 0.7 대 1로 급감했다”고 전했다.대학 정원은 많은데 지원자는 적다 보니 수험생들은 너도 나도 상향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대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지방대는 27일까지 진행되는 추가모집에서 2만7893명을 더 채워야 한다. 지난해(8930명)의 3배가 넘는다.
작금의 현실을 전북 B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방대는 지역 안에서 학생을 나눠 먹는 거잖아요. 유동인구는 줄었는데 편의점 대여섯 개가 쭉 붙어 있는 거예요. 등록금 공짜로 해줄게, 노트북 줄게, 별별 유인책 쓰면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거죠. 솔직히 ‘제발 먼저 망하는 대학이 있어라’ 바라기도 해요.”
실제로 광주 호남대는 올해 신입생에게 아이폰과 에어팟을 준다고 해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지난해 3.9 대 1까지 갔던 정시 경쟁률은 0.8 대 1에 그쳤다. 지방대 관계자들은 “사람 수 자체가 줄어드니 뭘 준다고 해서 올 상황이 아니다”며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해도 안 오더라”며 허탈해했다.
이런 상황은 전문대에서 더욱 심각하다. 4년제 대학도 골라 갈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학생들이 전문대에 오지 않는 것이다. 서울 C전문대 관계자는 “우리는 보험용이라 4년제 합격하면 다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취업사관학교’로 불리는 보건계열이나 뷰티, 게임, 비서 등 인기 학과도 올해 경쟁률이 참혹하게 떨어진 대학이 상당수다.
○ 이미 10년 전 마른 수건 “못 채우면 죽는다”
등록금이 13년째 동결된 상황에서 학생마저 급감하자 지방대들은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턱밑으로 느끼고 있다.“한 학생당 1년 등록금을 400만 원만 잡아도 100명을 못 채우면 4억 원이 비잖아요. 올해 입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계속요. 재정적 압박이 말도 못 하게 큽니다. 대부분의 대학이 이번 주까지 올해 예산을 확정하는데 과마다 ‘이게 꼭 필요하냐’면서 살벌하게 싸워요.”
대학들의 긴축재정은 눈물겹다. 부산 D대는 학교에 전화 상담원 대신에 ‘챗봇’을 도입하기로 했다. 경남 E대는 교수들이 잘 안 보는 학회지 구독을 끊었다.
지방대는 다니던 학생들조차 ‘서울로 가겠다’며 떠나 이중고를 겪는다. “코로나19로 학교에 안 오니 반수가 쉽잖아요. 학령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니 재수하면 좋은 학교 입학하기는 더 쉽고….”(경북 F대)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교육부가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를 진행하는 해라 충원율에 대한 대학들의 스트레스가 정점에 달했다. 평가에서 일반재정지원대학으로 선정되지 못하면 내년부터 3년간 매년 평균 40억∼50억 원 규모의 혁신지원사업비를 받을 수 없다. 이번 평가에서는 심지어 학생 충원율 지표에 대한 배점이 2주기 평가 때보다 2배나 올랐다. 지방대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학생을 채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해인데 어딜 돌아봐도 애들이 없습니다.”
최예나 yena@donga.com·이소정·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