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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에서 사라진 김대중과 노무현의 유산[광화문에서/한상준]

입력 | 2021-02-26 03:00:00


한상준 정치부 차장

“개별 사업에 대해 딱 찍어 가지고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면제한다고 할 경우에는 아주 안 좋은 선례로 남아서 앞으로 두고두고 ‘왜 저기는 해주고 우리는 안 해주냐’라고 하는 그런 안 좋은 선례로 작용을 할 것이다.”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는 특별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응천 의원은 이같이 토로했다. 여당 당론대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예타 면제 조항을 담기에는 여당 의원도 부담이 된다는 의미다.

예타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도입됐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증해 예산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이 300억 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이 대상이다.

진보 정권 때 마련된 제도지만, 보수 정권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예타를 없애지 못했다. ‘국가 재정을 지킨다’는 예타의 대의명분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제아무리 실세 의원이라도 예타의 벽을 넘지 못하면 지역 민원 사업을 밀어 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예타가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2019년 1월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등을 명분으로 총 24조1000억 원 규모의 전국 23개 사업을 예타 면제 대상으로 선정했다. 논란이 커지자 당시 문 대통령은 “예타 제도는 유지돼야 하지만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예타 제도 개선은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대신 예타 면제 규모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번에 최소 10조 원이 넘는 예산이 드는 가덕도신공항까지 예타 면제가 가능해지면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예타 면제 사업 규모는 100조 원을 넘어섰다. 이명박 정부(60조3000억 원)와 박근혜 정부(23조6000억 원)의 예타 면제 규모를 더한 것보다도 많다.

진보 정권에서 도입된 제도가 문재인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진 경우는 또 있다. 인사청문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검증 대상과 절차를 법제화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적용 대상을 국무위원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고자 한다”고 했고, 실제로 이를 관철시켰다.

뒤이은 보수 정부들도 인사청문회에 호되게 당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17명)도, 박근혜 정부(10명)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29명에 달하는 문재인 정부처럼 많지 않았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나와도 딱히 할 말이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 제도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예타의 경우 지역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에서 비(非)경제적인 요소를 더 중요시할 필요도 있고, 청문회 기피 현상이 날로 심해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책임 있게 제도 개선에 나서는 것이 집권 여당의 자세다. “십수 년 동안 유지된 제도를 문재인 정부에서 바꿨다”는 말은 듣기 싫고, 그러면서도 예타와 인사청문회는 건너뛰고 싶은 지금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174석의 민주당에 불가능이란 없지 않은가.


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