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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전력생산 40년째 제자리… 김정은 “전기가 경제 발목” 연일 닦달[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1-02-26 03:00:00

유엔 대북제재에 北전력난 심화




2014년 1월 30일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한반도.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진 한국과 달리 북한은 평양을 제외하곤 암흑으로 변해 심각한 전력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미국항공우주국

권오혁 정치부 기자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로 주민들에게 배급되는 전기는 아예 없다. 예전엔 전기가 들어오는 공장이나 기관에 돈을 주고 전기를 끌어다 썼지만 (이젠) 공장들도 전기가 끊겨 그마저도 힘들어졌다.”(2019년 탈북한 양강도 출신 A 씨)

“불을 켤 전기가 없으니까 해 질 무렵 저녁을 미리 먹었다. 어두워지면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계속 누워 있거나 잠을 잤다. 겨울에 기온이 영하 30도 넘게 떨어져도 히터조차 켤 수 없었다.”(2018년 탈북한 함경북도 출신 B 씨)

북한 일반 주민들이 하루 종일 전기를 쓰는 일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북한의 전력난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은 동아일보에 “한국에 온 뒤 도시 야경이 얼마나 멋진지 3일 연속 밤마다 밖에 나가 구경을 했다” “지금도 눈만 뜨면 TV를 켠다. 마음껏 TV를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북한 내 저조한 전력 생산량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주민들에게 배급되는 전기가 끊겼다. 가정집들은 대부분 태양광 패널을 통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충전해 사용하고 있다. A 씨는 “날이 좋을 때 햇빛판(태양광 패널)으로 하루 종일 충전하면 노트텔(휴대용 영상장비)을 5, 6시간 볼 수 있다”며 “전기가 약해 TV는 관상용이고, 히터나 냉장고는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전기가 들어가는 공장이나 기관에 돈을 주고 전기를 받아쓰는 경우도 있지만 전기를 살 돈조차 없는 주민이 많다.

시골 지역일수록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새로 개편한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북한 전체 인구의 26%만 전력망을 통한 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시골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11%에 그친다.

최근 평양 주재 외교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수도 평양의 상황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인한 국경 봉쇄, 대북 제재에 따른 고립 때문에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평양 주재 체코대사관 관계자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지난해와 달리 최근 여러 차례 대사관 구역이 정전을 겪었다”며 “전력으로 평양 내 대부분의 주택이 배터리가 들어가 있는 소형 태양광 패널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 39년간 南 전력생산 15배 늘고 北은 제자리걸음


1980년 212억 kwh(킬로와트시), 2000년 194억 kwh, 2019년 238억 kwh.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의 전력 생산량 추정치다. 39년간 북한의 전력 생산량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전력 생산량은 372억 kwh(1980년)에서 5630억 kwh(2019년)로 15배로 늘었다. 남북 간 전력 생산량 차이도 23배로 벌어졌다.

북한 전력난의 주된 원인은 발전 시설의 노후화다. 주요 발전소들이 일제강점기나 1940∼1960년대에 지어졌으나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현재 북한 최대 수력발전소인 수풍발전소는 1944년 완공됐다. 최대 화력발전소인 북창화력발전소는 옛 소련의 원조로 1968년 착공해 1972년 전기 생산을 시작했다. 설비 확충이 부족한 데다 시설 노후화로 가동이 중단되는 경우가 잦고 생산 효율도 낮다는 점이 북한의 전력 생산의 고질적인 문제다. 게다가 화력발전은 부품과 기술을 대부분 중국,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대북 제재와 경제난으로 에너지 수입을 해외에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의 전력 수급은 대부분 화력과 수력발전으로 이뤄진다. 2019년 기준 화력과 수력을 통한 전력 생산은 각각 53.8%와 46.2%를 차지했다. 한국의 경우 같은 해 화력이 67.4%, 원자력 25.9%, 신재생에너지 5.6%이며 수력발전은 1.1%에 불과하다.

대북 제재로 석유 수입이 막히면서 북한의 화력발전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수력발전의 경우 강수량의 영향을 크게 받아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어렵다. 2015년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수력발전량이 예년의 120억, 130억 kwh 수준에서 100억 kwh로 크게 감소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노후화된 화력이나 수력발전 설비를 개선할 충분한 역량이 없다”며 “대북 제재로 원자재나 부품 수입이 막힌 상태”라고 했다.

발전소뿐 아니라 송·배전시설 노후화도 문제다. 송·배전망이 노후화돼 어렵게 생산한 전력이 공급 과정에서 상당 부분 손실되는 것. 전문가들은 송·배전 과정에서 전력 손실률이 적게는 20%, 많게는 50%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로 북-중 접경 등에서 이뤄지는 수력발전은 평양에서 거리가 멀어 누전 손실이 크고 전압도 낮다. 1990년대부터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주민들이 전기선을 잘라 팔거나 송·배전 시설까지 훔쳐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전력난에 공장 멈추고 양어장 종묘장도 닫아”


전력 부족은 주민들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북한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조업뿐 아니라 농업, 교통, 의료 등 대부분 분야가 전기 부족으로 제 기능을 못하는 실정이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대북지원단체 대표는 “전력이 부족해 공장은 물론이고 양어장, 종묘장, 비닐하우스 운영도 상당 부분 불가능한 상태로 알고 있다”며 “전력 없이 가축이나 채소를 키우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2016∼2020년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실패를 인정했다. 여기에도 전력난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4일 ‘북한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왜 실패했을까’ 보고서에서 “5개년 전략은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비효율적인 전통적 중화학공업을 재건하려는 기획이었다”며 “이로 인한 만성적 전력난이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도 최근 전력난의 심각성과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지난달 8차 당 대회사업 총화 보고에서는 “전력 문제를 푸는 것은 5개년 전략 수행의 선결조건이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의 중심 고리”라고 밝혔다. 또 이달 2차 전원회의에서는 “주요 공장, 기업소들과 농업부문에서는 전기를 조금이라도 더 보장해줄 것을 애타게 요구하고 있으며 탄광, 광산들에서도 전기가 보장되지 않아 생산이 중단되는 애로들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다만 자력갱생 기조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이 전력 문제를 자체적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5개년 전략에도 신규 수력발전소 건설과 기존 화력발전소 개·보수 사업이 포함됐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대북 제재로 2018년 이후 발전소에 필요한 품목 수입이 중단돼 기존 시설의 유지·보수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김경술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전력난 해소를 위해선 발전소를 새로 짓거나 개·보수를 해야 하는데 북한 자체 역량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외부로부터 자본과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단기간에 성과를 보이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규 발전소를 짓겠다는 구상도 실상은 다른 발전소 인력과 설비를 가져다 채워 넣는 주먹구구식이란 지적이 나온다. 탈북자 B 씨는 “새로 발전소를 짓는다 해도 주민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며 “어차피 다른 발전소의 낡은 설비를 옮겨 놨을 뿐이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밝혔다.

○ 대북 제재 속 전력 공급 어려워


북한이 경제난에서 벗어나려면 추가 전력 생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나 남북 협력 논의 때마다 북한과 에너지 협력 방안이 자주 언급됐다.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2003년까지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이후 공사가 중단됐다.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에도 한미일중러 5개국의 대북 에너지지원 제공 용의 표명, 한국의 대북 200만 kw 전력공급제안 재확인 등 에너지 협력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건넨 한반도 신경제구상에도 북한의 화력과 신재생에너지 등을 통한 전력 분야 개선 구상이 담겼다. 북한의 자체적인 전력만으로는 공장이나 철도·도로 등 교통망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사업체가 대거 입주했던 개성공단에도 2007년 한국전력이 만든 송·변전 설비를 통해 전기가 공급됐다.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개성공단에 송전하던 전기도 차단됐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된 뒤 전기 공급이 재개됐으나 지난해 6월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다시 중단됐다.

현재의 대북 제재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대북 전력 지원은 어렵다. 북한에 발전소를 짓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생산된 전력을 송전 시설을 북한에 설치해 보내는 것도 대북 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 발전기와 송·배전 설비 등이 대북 제재 품목에 속하는 만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제재 면제를 받아야 한다. 한 정부 당국자는 “남북 경협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수많은 구상이 나오지만 비핵화 논의가 진전을 이룬 뒤에야 가능한 내용들”이라며 “특히 전력 공급의 경우 군수용 등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권오혁 정치부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