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다음 날 다시 해녀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거제도와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와 바다 아래를 가로지르는 침매터널이 있는 병산열도로 향했다. “병산열도 앞쪽에 등대가 세워진 갯바위 보이지요. 가덕도에 살던 호랑이가 먹이가 없어서 거제도로 헤엄쳐 건너다가 저기에서 굶어 죽었답니다. 그래서 범여라고 해요.” 대죽도, 중죽도, 미박도, 구슬여, 노동여, 망덕여 등 선장은 섬과 갯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쉼 없이 이어갔다. 바다에 해녀를 내려주고 입항하면서도 선장의 설명은 계속됐다. 가덕도 주민과 거제도 주민 간 병산열도 쟁탈전에 관한 흥미진진한 전설을 듣는 사이에 배는 육지에 닿았다. 4시간 후 해녀를 태우기 위해 다시 출항했다. 망사리에 담긴 해산물의 편차가 심했다. 채취한 양이 다른데 수익금을 동일하게 나누면 많이 잡은 해녀는 불만이 없느냐고 물었다. “오늘은 막내가 적게 잡았지만 며칠 전에는 혼자서 우리 셋이 잡은 것보다 많이 채취했다. 경쟁하는 것보다 서로 도우며 일하고 똑같이 나누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필자는 동일한 이야기를 지난해 부산 송도 해녀를 조사하면서도 들었다.
한때 100여 명의 해녀가 있었으나 지금은 5명이 물질을 하는 송도 해녀작업장을 찾았을 때다. 10여 년 전부터 채취한 해산물을 공동으로 판매해 수익금을 동일하게 나누는 곳이다. “많이 채취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적게 잡는 사람이 있을 건데 갈등이 없느냐”고 물었다. 경쟁하지 않고, 함께 잡고 똑같이 나누는 지금이 행복하다며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 67세 해녀와 최고령 84세 해녀의 노동력 우열에 차등을 두지 않고, 공평한 분배와 노동 현장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제도다. 이는 독자적인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노인들도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이 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노동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된 것이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