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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전자음악의 神은 헬멧과 함께 사라졌다

입력 | 2021-02-26 03:00:00

2021년 2월 25일 목요일 흐림. 헬멧의 과학.
#343 Daft Punk ‘Around the World’(1997년)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의 토마 방갈테르(왼쪽)와 기마뉘엘 드 오멤크리스토.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시각은 과대평가됐다.

존 레넌의 안경, 비틀스의 더벅머리,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눈꼬리 화장, 데이비드 보위의 번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바나나, 마시멜로의 마시멜로…. 스타가 신(神)이 되는 이 판에서 저들은 예수의 십자가나 성모의 후광이다. 서너 개의 끝내주는 히트 곡에 강렬한 대표 이미지가 결합될 때 가수는 현대의 성화(聖畵) 속에 영원히 박제되는 것이다. 대중음악이 지난 100년간 다른 예술부문을 압도하는 광신적 추종을 확보한 데에는 저런 시각 버라이어티가 크게 한몫했다.

지난 세기에 나는 서울 마포구의 한 지하공간에 부단히 드나들었다. G서점 근처인데 한곳은 ‘백스테이지 1’(백1)이요, 다른 곳은 ‘백스테이지 2’(백2)였다. 영상음악 감상실. ‘유튜브 신(神)’의 세례를 받기 전, 시각의 황무지를 헤매던 인류는 퍼스널컴퓨터로 맘껏 동영상을 즐기지 못했다. 그때 백1과 백2는 사막의 오아시스요, 전쟁터의 간이 기도실이었다.

백1이 록과 메탈의 성수를 흩뿌렸다면 백2는 세련된 모던록, 브릿팝의 향수를 은은하게 퍼뜨렸다. 백1을 더 자주 내방했지만 가끔은 백2에서만 느낄 수 있는 대영제국과 구라파의 향취가 좋았다. 백2의 대표 레퍼토리, 다프트 펑크의 ‘Around the World’(QR코드)는 연출자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만큼이나 베개 위 머릿속을 맴돌곤 했다.

다프트 펑크가 며칠 전 전격 해체했다. 두 멤버는 이제 겨우 40대 중반. 멀쩡히 살아있다. 그런데도 음악 팬들의 애가(哀歌) 릴레이는 거의 추도 수준이다. 해체 발표 영상이 걸작이었다. 특히나 자폭하고 석양 너머로 사라지는 피날레. ‘인간을 위해 다년간 힙스터 음악을 만들며 헌신하던 표정 없는 로봇 듀오가 사라졌다.’ 이것은 꽤나 슬픈 스토리다.

그렇다면 전자음악의 신이 쓰던 로봇 헬멧은 어찌 되는 걸까. 일단은 ‘guymanuel74’나 ‘thomas75’ 같은 아이디가 나타나 D마켓에 헬멧 판매 글을 올릴지 지켜볼 일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