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기자간담회 캡처 © 뉴스1
식구(食口)란 한 집에 살면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가족의 또 다른 말로 식구가 쓰이는 건 매일 한데 모여 밥을 먹는 행위가 친밀해야 가능해서다. 다음달 3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배우와 감독 모두 식구가 된 영화다. 26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정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 윤여정, 한예리는 촬영장 밖에서 식구가 됐기에 카메라 앵글 안에서도 가족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영화는 1980년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제이컵(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와 이들의 자녀 앤(노엘 조), 데이비드(앨런 김) 그리고 타향살이를 하는 딸 모니카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할머니 순자(윤여정)의 이야기다.
“저와 윤여정 선생님이 에어비앤비에서 빌린 집에서 함께 지냈어요. 다른 배우와 감독님도 촬영을 마치고 그 집에 모여서 매일 저녁밥을 먹으면서 시나리오 이야기를 나눴죠. 그 때가 가장 그리워요.” (한예리)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와 닿는 이유는 영화가 저 개인이나 이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보편성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이컵의 가족이 겪는 갈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헤쳐 나가는 모습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게 아닐까요. 무엇보다 가족들의 인간적 모습을 잘 담아낸 배우들의 공이 가장 크고요.” (정 감독)
정 감독은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지만 배우들은 정 감독의 따뜻한 디렉팅을 치켜세웠다. 틀에 가두지 않는 감독 스타일 덕에 윤여정의 아이디어로 순자가 이로 밤을 깬 뒤 손자에게 건네는 장면, 손자를 침대에 뉘이고 자신은 바닥에서 자는 장면 등 ‘한국 할머니’의 정(情)을 생생히 표현할 수 있었다.
“제가 맡은 역이 아이작 감독의 할머니역이니 그에게 첫 번째로 한 질문이 ‘당신의 할머니 흉내를 내야하느냐’였어요. 그러자 아이작이 ‘절대 그러지 말고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더군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이 감독 괜찮다’며 A+를 줬죠. 어떤 감독은 ‘이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배우를 가둬요. 전 아이작 덕에 자유를 얻었어요.” (윤여정)
이들은 관객들에게도 함께 식구가 돼 줄 것을 청했다.
“미나리가 좋았던 이유는 시나리오에 아무런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담백하고 순수한 맛이라 양념을 세게 하는 한국 음식에 익숙한 한국 관객은 안 먹을 수도 있겠지만 건강하니 잡숴보세요. 하하.” (윤여정)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