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프트 펑크―Giorgio by Moroder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1993년 결성해 27년간 활동하며 제56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다섯 개의 상을 받던 때가 음악 인생의 절정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로봇이라 설정하고 헬멧을 쓰고 다니느라 비록 시상식장에선 말 한마디 못 하긴 했지만. 이들에게 영광의 순간을 있게 해준 네 번째 앨범 ‘랜덤 액세스 메모리스’는 다프트 펑크를 상징하는 명반이다. 다프트 펑크를 스타덤에 올린 2집 ‘디스커버리’의 우수함도 빼놓을 수 없지만 ‘랜덤 액세스 메모리스’는 여러모로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다.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디스코 밴드 시크(Chic)의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와 전자음악의 거장 조르조 모로더 같은 대선배를 작업에 ‘모셔온’ 것이다. ‘랜덤 액세스 메모리스’ 자체가 자신들이 편견 없이 들어온 옛 음악에 헌사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동안 해오던 작업과 달리 실제 악기로 새로운 형태의 전자음악을 만들려 했고 나일 로저스 같은 기타리스트의 연주는 그래서 더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노래는 ‘조르조 바이 모로더’다. 한국인에겐 88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만든 작곡가로 유명한 조르조 모로더는 세계에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자음악가 및 영화음악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다프트 펑크의 두 멤버는 존경해온 음악가의 구술을 녹음해 음악으로 만들었다. “내가 15∼16세였을 때쯤”이란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조르조 바이 모로더’는 9분짜리 음악 자서전이다. 이보다 더한 존경과 감사는 없을 것이다.
다프트 펑크 해체를 보며 새삼 놀란 건 이들이 이미 30년 가까이 활동해왔다는 사실이다. 동시대를 함께 보낸 아티스트다 보니 내가 나이를 먹는 건 생각하지 않고 이들은 계속해서 청년인 것만 같았다. 다프트 펑크는 ‘랜덤 액세스 메모리스’를 통해 과거와 전통에 대한 존중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그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약 30년 뒤 후배들이 또 다른 다프트 펑크의 음악 자서전을 만드는 상상을 하며 또 한 번 ‘조르조 바이 모로더’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