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카인드/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조현욱 옮김/588쪽·2만2000원·인플루엔셜

하지만 현실은 소설과 달랐다. 1965년 6월 태평양을 표류하다 통가제도의 바위섬에 갇혔던 소년 6명은 15개월간 고립됐을 때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역할을 나눴다. ‘파리대왕’ 속 소년들은 불을 차지하기 위해 난투극을 벌이지만, 현실의 소년들은 힘을 합쳐 어렵게 피운 불을 1년 이상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와 유발 하라리가 각각 ‘이기적 유전자’ ‘사피엔스’에서 주장한 성악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성악설을 뒷받침한 실험들이 왜곡됐음을 지적하고, 서로를 믿지 못할 때 모두가 권력의 통제 대상으로 전락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방관자 효과’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캐서린 수전 제노비스 살인사건도 일정 부분 왜곡돼 있다고 지적한다. 1964년 3월 미국 뉴욕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죽어간 제노비스를 발견한 사람들이 37명이 아니라 3, 4명의 이웃이었다면 즉각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사람들이 원래 친절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건 감상적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게 아니다. 오히려 평화와 용서를 믿는 건 용감하고 현실적”이라고 강조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