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여권 “수사·기소 분리, 글로벌 스탠다드”…OECD 77%, 檢 수사권 보장

입력 | 2021-02-28 21:26:00


“1987년 이전의 문제투성이인 영국 상황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전면 금지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내용으로 여권이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안에 대해 이미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같이 평가했다. 이 교수는 28일 개인 블로그를 통해 “중수청과 가장 유사한 기관은 영국의 중대비리조사청(SFO·Serious Fraud Office)이지만 SFO 설립 취지와 기능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는 정반대”라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영국 형사사법제도로는 사기, 뇌물, 부패 등 범죄에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책으로 등장한 기관”이라고 지적했다.

“수사-기소 분리는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우리의 중대범죄수사청이 영국의 SFO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여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다른 형사법 전공 교수들도 “여당 의원들이 사실과 다른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을 하고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영국은 3년 논의…‘밀어붙이기’식 추진 안 돼”
수사청 설치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은 “문명국가 어디에도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전면적으로 행사하는 나라는 없다”며 올해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이 맡게 된 부패, 경제 등 6개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도 중수청을 만들어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나라 검찰처럼 수사 전반을 직접 수행하는 검찰이 있는 나라는 사법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검찰총장이 직접 수사조직을 꾸리고 지휘하는 독점적·제왕적인 지휘권을 행사하는데 이런 경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권이 모범 사례로 제시한 영국 SFO의 경우 공식 홈페이지에 1987년 설립 배경에 대해 “검사와 수사관이 복잡한 사건을 해결할 때 초동수사 단계부터 협력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설명되어 있어 여권의 주장과 거리가 있다. 영국은 경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했다가 경찰권 남용 문제가 불거진 뒤 1986년부터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왕립기소청(CPS·Crown Prosecution Service)이 맡도록 분리했다.

그러자 수사와 기소의 분리로 인해 부패 범죄 대응 역량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SFO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기, 부패 등 중대범죄의 수사와 기소 권한을 한 기관에 부여한 것이다.

이 교수는 “영국은 제도 개선에 앞서 위원회를 발족해 3년에 걸친 조사 연구를 했는데 모든 가능성을 꼼꼼히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라며 “(우리는) 개정 형사소송법안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전광석화로 중대범죄수사권마저 검찰로부터 박탈하는 안을 6월 안에 통과시키겠다는 패기와 오만의 근거는 뭔지”라고 지적했다.

●“OECD 회원국 77%, 검사 수사권 보장”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제한하는 게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신태훈 창원지검 마산지청 부장검사가 2017년 학술지 ‘형사사법의 신동향’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가운데 77%인 27개국이 검사의 수사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멕시코와 이탈리아 등은 헌법에 검사의 수사권을 명시하고 있다. 검사의 수사권을 법으로 정해 놓지 않은 나라는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이스라엘 등 총 8개국이었다.

검찰이 부패 범죄 등을 직접 수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최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벚꽃 스캔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직접 수사하고 있다. 독일 검찰도 과거 ‘폭스바겐 연비 조작 의혹’ ‘최순실 씨의 돈세탁 혐의’ 등을 수사했다. 미국 연방검찰도 2015년 ‘폭스바겐 연비 조작 사건’ 등 여러 사건을 직접 수사한 전례가 있다. 미국 뉴욕주 맨해튼 검찰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비위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형사소송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여러 기관에 쪼개져 있는 영국의 경우 판사 숫자만 우리나라의 10배가 넘는 3만 명에 달한다. 외국의 검찰제도가 생겨난 맥락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각자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고도예 yea@donga.com·배석준 기자


고도예기자 yea@donga.com
배석준기자 eulius@donga.com